거울아 거울아, 너 지금 뭘 보고 있니?

'평균의 함정'과 우리가 잃어버린 오답의 향기

by 온설
인공지능이 우리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비유는 꽤 근사합니다. 하지만 요즘 내가 들여다보는 그 기술의 거울은 어쩐지 조금씩 김이 서리고 있어요. 마치 아침 출근길에 바빠서 대충 닦고 나온 세면대 거울 같습니다.


인공지능을 공부하며 마주한 모델 붕괴(Model Collapse)라는 용어는 생각보다 훨씬 흥미롭고, 한편으로는 조금 우습기까지 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공지능이 만든 결과물이 인터넷 세상을 뒤덮고, 그 데이터들이 다시 인공지능의 학습용 간식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무한 반복되고 있는 것이죠.



거울이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맑은 샘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와야 할 자리에 이미 한 번 마신 물이 고여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셈입니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인공지능은 우리가 사랑하는 예기치 못한 파격이나 엉뚱한 아름다움을 잃어버립니다. 마치 복사본을 다시 복사할수록 글자가 흐려지고 종이에 정체 모를 검은 점들만 남듯, 인공지능 역시 자기 복제의 늪에 빠져 결국 모든 가치가 비슷해지는 ‘평균의 함정’에 갇히고 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기술에 느꼈던 그 정체 모를 공포는 어쩌면 이 '흐릿한 거울'을 직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나를 비추어야 할 거울이 나를 닮은 기괴한 평균값만 내놓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니까요. 이 흐린 거울을 다시 선명하게 닦아낼 에너지는 어디에 숨어 있을까요?


나는 그 답이 기계는 죽었다 깨어나도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인간들만의 생생한 이탈에 있다고 믿습니다. 챗GPT가 1초 만에 쏟아내는 매끄러운 정답들은 가끔 너무 완벽해서 서늘하기까지 하죠. 하지만 인공지능이 억만 광년을 학습해도 절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삶의 조각들은 늘 정답의 궤도 바깥에서 툭툭 튀어나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교실 문을 열던 아이가 건넨 “선생님, 오늘 하늘색이 꼭 뽕따 아이스크림 같아요”라는 엉뚱한 비유, 수행평가 지문 옆에 작게 그려놓은 시험 문제와는 아무 상관 없는 고양이 낙서, 시 쓰기 수업 중 '그리움'이라는 단어 대신 '엄마가 해준 김치볶음밥 냄새'라고 적어 넣은 투박한 진심 같은 것들 말이에요.


인공지능의 세계에서 데이터가 아닌 값은 제거해야 할 노이즈(Noise)일지 모르나, 우리 삶에서 그 노이즈는 곧 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고유한 목소리가 됩니다. 데이터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덮쳐와도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 ‘데이터가 되지 못한 것들’은 여전히 빛이 납니다. 이제는 기술의 속도에 감탄하기보다, 기술이 닿을 수 없는 우리 마음의 깊이를 한 번 더 토닥여줘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교단과 가정을 넘어, 타인을 대하는 나의 모든 태도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타인이 얼마나 '정답'에 가까운 삶을 사는지, 얼마나 효율적인 결과물을 내놓는지로 그 가치를 판단해왔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인공지능의 성능 지표(Metric)를 따지는 차가운 시선처럼 말이죠.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귀한 것은 상대의 매끄러운 완벽함이 아니라 그 이면의 서툰 진심아닐까요.아이의 엉뚱한 질문을 오답이라 치부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의 싹으로 봐주는 다정함, 차가운 알고리즘이 절대 삼킬 수 없는 나만의 그 신선한 관점 한 줄, 이런 것들이 오늘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준다고 나는 굳게 믿습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거울은 결코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습니다. 그 거울을 닦고, 그 앞에 서서 무엇을 비출지 결정하는 주인은 여전히 '우리'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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