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호를 만들었다는 일본의 선박 회사도 아직까지 건재해 있었다. 그 시절 고승호의 항해 일지 정도를 알아내기 위해 일본의 선박 회사에 메일을 보내 보았다. 일본 쪽에서의 답변은 짧고 명료했다. 군산과 장항 등지에서 본토로 명주실과 쌀을 운반하던 화물선이었고, 그 당시 여러 차례 수송을 했다고 답장이 왔다. 그들은 아직도 금괴를 명주실로 밝히는 듯했다. 장항에서의 증언이 아니었더라도 일본의 답변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장항이 산업화되면서 명주실을 짤 만한 농가가 있을 턱이 없었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비상해진 사람처럼 여러 가지 추측과 가정으로 금괴를 가슴에 켜켜이 쌓아 가고 있었다.
아직도 넘기지 않은 3월 달 달력을 뜯어 뒷면의 백지에 커다랗게 장항항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고승호가 침몰한 비안도 부근에 둥그렇게 표시를 해두었다. 그리고 그 그림을 책상 옆에 보기 좋게 붙여 놓았다. 지도를 들여다보기만 해도 바다 밑에 수장된 금괴가 모두 내 것 이 된 것 같았다. 용기를 내야만 했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획획 돌아간다. 하얀 바다에 속절없이 가라앉았을 타이타닉을 만나러 가야 했다.
나는 곧장 선박 조종사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시험과목이 4개나 되었지만 그동안의 자격증 공부보다 가속도 있게 머릿속에 저장되어 갔다. 항해, 운용, 법규, 기관 과목을 착착 습득했다. 프라모델 조립을 여러 번 했던 경험으로 피벗, 기선 같은 기관의 용어들을 발견할 땐 눈이 더없이 반짝였다. 항해사, 기관사, 운항사, 소형선박 조종사 같은 단어만 들어도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번의 도전으로 25톤 이하 소형선박 조종사 자격증을 따냈다. 이제 나에게도 어업활동이나 선박영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중년의 삶은 바다에서 지내야겠다는 나의 꿈은 이렇게 실현되어 갔다.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자 나는 마이너스 통장에서 천만 원을 꺼내 들고, 드디어 가족 모르게 다시 장항으로 향했다.
밀물이 들어오는 중인지 장항의 바다는 온통 물거품을 일으키며 하얗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신발을 벗고 앞으로의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며 해변을 걸었다. 발가락 사이로 하얀 모시조개가 이리저리 밟혔다. 이 모시조개들은 나의 고승호가 어디쯤 수장되어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시조개를 한 주먹 쓸어 모아 바다 멀리 던져주었다.
장항에 숙소를 정하고 먼저 배를 한 척 빌렸다. 그리고 운전 연수받듯 선박 대여소에서 나온 숙련된 선박 조종사에게 일주일간 장항 물살에 맞는 항해를 배웠다. 바다마다 물살이 틀려서 경력이 많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은 항해가 힘들다고 했다.
드디어 첫 출항이다. 처음 몇 번은 선배 항해사와 함께 해야 한다고 했지만 용기를 내어 혼자 멀지 않은 바다로 나가보기로 했다. 배운 대로 컨트롤 케이블과 조타 장치를 확인하고 배에 시동을 켜자 조용하던 10톤 어선이 요란한 트림 소리를 내며 꿈틀댔다. 하지만 잠시 후 부드러워진 엔진 소리를 확인하고 배운 대로 전후진 조종레버를 움직였다. 어선이 조금씩 나아가는 것을 느끼며 침착하게 고승호가 침몰했을 만한 장소로 가서 배를 몰고 갔다.
처음 아들의 시험지를 확인하고 금괴를 찾아 여기까지 오는데 채 두 달이 안 걸렸다. 모처럼 살아있는 게 이렇게 신나는 일인지 몸소 느끼며 한참 동안 검은 바닷속을 들여다보았다. 저 멀리 하얀 바닷속 깊이 지난번 꿈속에서 보았던 대왕조개가 입을 활짝 벌리고 반짝이는 듯했다. 부푼 꿈을 품으며 장항 앞바다를 한 바퀴 돌고 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진짜 금괴잡이 시작할 날을 점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