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도착하니 아내와 아들이 늦은 저녁을 이제 막 끝낸 뒤였다.
“어, 배고프다.”
나는 식은 동태찌개와 깍두기를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오늘 내가 어딜 갔다 왔는지 알아?”
“뭐 또 쓸데없는 짓이나 하고 돌아다녔겠지.”
순간 철없는 어린아이 취급으로 무시하는 아내의 말투에 머리가 쭈뼛 솟아올랐다. 아내는 나랑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티슈 두 장을 뽑아 들고 화장을 지우며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아마 말도 없이 새벽에 나가버리고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돼서 화가 단단히 난 게 틀림없다. 그래도 그렇지, 남편한테 짓이라니 짓!
나는 오늘의 행적을 되짚으며 구겨진 마음을 애써 펼쳐내야만 했다. 얼음장 같은 아내도 결국 내가 찾은 금괴를 보면 쾌재를 부를 것이라는 생각에 구겨진 마음은 금세 반듯하게 펴져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녁을 먹는 내내 아내와 아들은 주방에 나와 보지 않았다.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아들이라도 '오늘 어디 갔었어요?'라고 물어주기만 하면 나의 계획을 침을 튀겨가며 신나게 말할 자신이 있었다. 밤이 깊어가도 아내와 아들은 각자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늘 만큼은 김새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어코 아들 녀석의 방으로 쭈뼛거리고 들어갔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아들은 내가 들어왔는지도 모른 체 아무 반응 없이 폰을 넘기며 책상에 앉아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방문을 조용히 닫고 나와 버렸다.
하루 종일 먼지를 뒤집어쓴 안대를 벗고 안약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잘 준비를 한다. 거실 소파에서 리모컨을 쥔 체 오랜만의 먼 여행으로 여독에 지쳐 나는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다. 마치 혼수상태로 하루를 보낸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어제 장항에 다녀온 게 혹시 꿈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메모해 놓은 수첩을 꺼내 보았다. 과연 나는 어제 장항에 가서 금괴 이야기를 확인하고 온 것이 확실했다.
1943년 6월 13일 장항 제련소에서 장항에서 만들어진 비금속 광물과 쌀 300톤을 싣고 일본으로 가던 887톤급 화물선 '고승호'가 장항을 출발해 비안도 부근에서 폭격을 맞아 침몰했다고 한다. 고승호가 분명 금괴 수송 화물선이었을 것이다. 아직 금괴를 찾은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먼저 건져낸 놈이 임자라는 말이 된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들과 아내를 위해서라도 여봐란듯이 금괴를 덥석 품에 안겨줘야 했다. 고승호는 나의 타이타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