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잘 골랐다는 생각을 하며 영감에게 바짝 다가가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여기가 금덩어리 아니며 어디 발걸음이나 하는 동네겠수?”
영감은 반쯤 물에 젖은 담배를 입에 물고 하얗게 연기를 내뿜었다.
“혹시, 사람들이 자주 여길 찾아옵니까?”
“암, 사실 장항제련소가 해방되기 전까지 일본 정부가 세운 금괴 공장이었다고 합디다. 그 금괴에 대해서 여기 동네 노인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 사람들이 간간이 뭐 좀 찾아볼까 하고 전국에서 일 년에 몇 팀은 진을 치고 와서 마을을 들쑤신다우.”
“그럼 금괴를 찾은 사람들도 있나요?”
“그야 모르지. 누가 금괴 찾았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이가 있나? 그 당시 일본 놈들이 금괴만 실은 게 아니라 도자기, 뭐 그런 우리나라 예술작품들도 다 배에 실어 일본으로 보냈다고 합디다.”
“아하, 그래요?”
“근데 그때 누가 알까봐 그것들 위에 명주실을 잔뜩 덮어서 위장하고 같이 싣고 갔다고 합디다. 내가 10살도 안 됐을 때 얘기라 주워들은 얘기지만 언제는 바다가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을 때도 있었다나.”
명주실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나는 간이 벌렁거려 겨우 진정하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명주실이요?”
“암, 나도 동네 으른들한테 들었는데 폭격이 터지고 난리가 난 다음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바다가 하얗게 될 정도로 그 명주실이 둥둥 떠서 해변에 쌓였답디다. 이 동네 사람들 중에 금괴 얘기 모르는 사람 없을 것이요.”
“금괴 실은 배가 침몰하고 그랬다는 말씀이군요.”
“말도 마슈, 금괴 찾겠다고 외지에서 선생 같은 사람들 숱하게 기웃거렸다니께.”
“근데 왜 정부에서 바다 속을 수사 안 할까요?”
“해방되고 난 후로 나라에서 몇 번 와서 잠수함이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오고 난리를 치더니 흐지부지 됐다고 합디다.”
“여기 바다가 수심이 깊고 물속 지형이 험해서 잠수함도 운행이 어렵다고 하든데 그래서 그런가보네요.”
“나야 모르지.”
노인은 다시 하던 그물 손질을 이어갔다. 조금씩 확신이 들며 금괴 수송에 실마리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모형 배의 골격을 잡아갈 때와 같은 흥분이었다.
“어르신, 바쁘신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나는 노인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이정표를 따라 장항읍 사무소에 들렀다. 장항읍 사무소 입구에는 장항의 변천사가 사진 액자로 여러 개 전시되어 있었다. 갈매기가 날고 조용했던 포구의 그 옛날 장항은 그 당시 일제의 수탈 기지로 변해버렸다. 얕은 바다에 나가 물고기나 잡아먹던 순박하고 초라했던 마을은 어느 날부터인가 철도가 놓이고, 수시로 많은 화물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는 기차에 실려 장항으로 끊임없이 들어왔다. 한가한 목선이나 드나들던 포구에는 검은 철선이 항구에 가로 놓여 뭉게뭉게 연기를 내뿜었다. 낮은 오막살이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던 마을에 거대한 공장이 들어서고, 갈매기만 한가로이 날던 푸른 하늘은 공장에서 내뿜는 굴뚝의 시커먼 회색빛 연기로 온통 뒤덮었다. 세월이 흘러 흘러 오늘의 장항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에서 조용조용 잠들고 있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장항의 험난했던 변화가 한 눈에 들어오는 듯 했다.
장항의 흑백 변천사를 잠시 훑어보고 나는 큰 뜻을 품은 전사처럼 입술을 앙 다문 채, 나는 다시 서울로 바쁘게 차를 몰아 내달렸다. 가로수의 화려함에 숨겨진 장항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정체되어있었다. 장항의 벚꽃이 하얗게 나를 배웅하며 다시 돌아오라고 손짓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