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에 도착하니 만개한 벚꽃이 거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아직도 일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일본 왕벚꽃은 사월의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우선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장항 제련소 자리를 찾았다. 조사한 바로는 LG화학으로 그 이름이 바뀐 터였지만 일본인들이 세웠다는 금괴공장이 바로 장항 제련소다. 실질적으로는 금괴 공장이었고, 표면적으로는 비철금속 공장으로 그 당시 동남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제련소였다.
일본이 떠나고 해방이 된 후에도 한동안 소유주를 바꿔가며 장항 제련소는 운영되었다고 한다. 그 후 2000년대 들어와 제련소 주변의 농경지에 중금속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해졌다는 이유로 장항제련소는 문을 닫았다. 10여 년을 흉물스럽게 남아있던 장항제련소는 LG화학이 인수해서 배터리 소재 첨단 산업단지를 만들었다. 만 평은 되어 보이는 공장지대에 삭막한 시멘트 색 건물들이 규칙적으로 세워져 있고, 건물 꼭대기마다 높다란 굴뚝으로 회색빛 공장 연기가 바람을 따라 나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공장 앞에는 덤프트럭이 수시로 지나다녔지만 넓은 도로에는 인적이 드물다.
장항은 죽은 도시처럼 느껴졌다. 대부분 주거지와 상권은 가까운 군산과 서천에 모여 있고 이곳 장항은 허름한 수산물 시장 하나와 작은 어촌마을, 그리고 이곳 LG화학 공장뿐이다.
나는 낯선 지역에서 낯선 모습으로 공장 앞을 서성거리다 항구 쪽으로 다시 차를 몰았다. 항구에서는 이제 막 부두로 들어온 조업선에서 잡아온 소라랑 꽃게를 뭍으로 내리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그사이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인을 발견하고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영감님, 수고하십니다. "
나는 한껏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영감의 그물을 같이 들며 노인의 일을 거들어주었다. 낯선 사람의 호의에 놀라 노인은 고개를 들어 손사래를 치며 귀찮은 표정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노인에게 바짝 다가갔다.
“어르신께 뭐 좀 여쭤보려고요.”
“무신 일인데 그러시오?”
나는 이때다 싶어서 노인의 그물을 힘껏 들어 뭍으로 내려주며 대화를 이어갔다.
“저.. 혹시.. 예전에 저기 장항제련소 자리, 언제부터 LG화학으로 바뀌었나요?”
영감은 건져 올린 그물을 손질하다가 허리를 폈다.
“한 15년쯤 됐나? 제련소 때문에 오염이 심각하다고 환경 단체에서 난리치다가 제련소 다 쓸어버리고 저, 뭔 화학인가 뭔가가 들어왔을 거요.”
“어르신도 여기 계속 사셨으면 허물기 전에 장항제련소 보셨겠네요?”
“그럼, 내 젊었을 때 제련소에서 일한 적도 있었지. 그나저나 선생은 누군데 꼬치꼬치 그런 걸 물어보시오?”
“아, 저는 이곳 장항에 대해서 취재 차 여길 방문했습니다. 근데 어르신은 그럼 제련소에서 무슨 일을 하셨더랬죠?”
“나야 뭐 변변한 기술이 있었나, 금강으로 흘러온 짐들을 하역하는 일이나 했지 뭐. 허, 당신도 혹시 그 놈의 금덩어리 때문에 오셨슈?”
“금이요?”
나는 순간 뜨끔해서 비밀이라도 들킨 듯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말도 마슈.”
영감은 허리춤에서 담배를 꺼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며 뜸을 들였다.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