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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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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Nov 22. 2023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8.

60대, 그들만의 여유와 태만

작가님, 작가님도 7층 숲아저씨가 궁금하실까요?

카톡을 열었다는 얘기까지 했던 것 같은데...


저는 호기심 터지는 마음으로 7층 숲해설사분의 카톡을 열었어요.

짠~

풉, 장성한 아들과 아내분과 함께 찍은 프사가 나오더라고요. 아들은 뭘 먹고 컸는지 키가 크고 잘 생긴 청년이었고, 아내분은... 사랑 듬뿍 받고 사셨던 듯 치아를 일곱 개나 보이며 방긋 웃고 있었죠. 아주 단란한 가정처럼 보였어요.

사진 스캔 후 다음 페이지를 넘기니, 뭐 중년들 프사가 그렇듯, 알록달록 꽃과 숲 사진들 몇 장이 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장. 우리 동네 제가 자주 가는 852 카페 사진이더라고요. 거기 토스트와 수제크림치즈가 맛있어서 자주 가는데, 익숙한 창가 자리에 앉아 차 마시는 여유로운 모습의 가족들 사진이 있었어요.

뭔가 단정해 보이고, 단란해 보이고, 단단해 보이는 그분의 삶이 참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모래성 같은 제 삶이 부끄럽기도 했어요.

저는 갑자기 심술보가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제 폰에 저장된 852 카페 사진 한 장을 제 프사에 올렸어요. J랑 브런치 먹으러 갔다가 찍은 사진이었죠.

저는 폰을 침대 끝으로 던져버리고 엎드린 채 베개에 파묻혀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미미를 본 사람이 연락을 했다며 그분에게 연락이 왔어요. 어느 집 유모차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미미는 그동안 발을 동동 구르던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일 없었던 듯 집에 데려다 놓자마자 동그란 눈으로 자기 발바닥만 연신 핥았습니다.




저는 두 손 모아 여기저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서둘러 <한상가득> 한정식집 예약을 했어요.

맞아요. 7층 아저씨의 저녁식사 자리요.

지하주차장에서 만나 그분의 차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어요.


진한 데님원피스에 초록 니트베스트를 입은 저는 가뿐하게 차에 올라탔어요. 데님원피스 옆트임 때문에  눈치 없이 탱탱한 허벅지가 하얗게 자꾸 드러났어요. 저는 열심히 치마깃을 끌어당겨 다리를 가리며 조용히 앞만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탄 검은색 세단은 얼룩 하나 없이 반짝이며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습니다.

하얗고 가느다란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거의 움직임 없이 단정하게 차를 모시더라고요.

조용히 운전하시는 그분의 숨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신호등에 걸리면 작은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분은 '뭐 특별할 것 없는 식사 자리'라고 생각하시는 듯했어요.

하지만 저는 뭔가 불안하고 긴장되고 야릇했습니다. 갈 곳을 잃어 콘솔박스에 팔꿈치를 걸친 그분의 하얀 오른손의 솜털이 자꾸 제 허벅지와 닿을락 말락 했거든요. ㅋㅋ

게다가 차량용 방향제의 자몽향은 제 마음을 자꾸 들뜨게 했어요.

침을 꼴딱 넘기며 용기를 내어 어색한 침묵을 제가 먼저 깼습니다.


- 선생님, 지금 흥얼흥얼 노래 부르시는 거 아세요?
- 엥? 제가요?
- 예. 신호에 걸려있을 때 말이에요.
- 아이고, 제가 그랬나요? 들켰네요. 허허. 오랜만에 젊은이와의 저녁 약속이라서...


차창문을 열어 창문턱에 팔을 걸치고는 가지런한 치아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게 웃으셨어요. 그 모습이 사진 속 아내분을 닮아 가시는 듯 해맑게 보였죠. J의 무심한 표정 하고는 다른, 60대, 그들만의 여유와 태만이 함께 뒤엉켜있는 나이스한 모습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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