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jury time Nov 14. 2024

부금 4백만 원 사건의 전말 2

그 남자의 구질구질한 사정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쁘게 축제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한 시간 일당이라도 아끼고 싶었던지 업주는 원래 약속했던 9시에서 한 시간을 뺀 8시에 그의 업무를 마무리시켜주었다. 마치 그를 생각해서 한 시간 일찍 끝내주듯 생색을 내며 업주는 10시간어치 기름진 현금 12만 원 일당을 돈 통에서 꺼내 길태에게 넘겨주었다.


공원 화장실에서 대충 닭 분장을 지우고서야 그는 폰을 확인했다.

그의 어머니 장순남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 7통, 고용노동청 청년취업알선안내 메시지 1건, 인터넷 불법 도박 사이트 메시지 2건,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바로 그 입금 문자가 정확히 12시 12분에 와있었다. 길태는 취업알선 안내메시지나 입금 문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우선 일곱 번이나 전화를 건 그의 어머니 장순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네, 12만 원 받았어요. 한 시간 일찍 가라고 해서..., 예, 알겠어요. 들어갈 때 사갈게요.     


들어올 때 두부랑 우유를 사 오라는 그의 어머니 전화다. 길태는 기어들어가는 어눌한 목소리로 어머니와 몇 마디 대화를 한 후 조용히 통화종료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아직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은 검은 눈두덩이를 한번 꾸욱 눌러 눈물을 참아내며 낯선 입금 안내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Web 발신]

농협132****7050

06/11 12:12 입금

부금 1

4,000,000원

잔액 4,001,089원  


아무리 생각해도 길태에게 4백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입금할 사람은 이 지구상에 아무도 없었다. 길태는 현기증이 나는 머리를 흔들며 폰을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너무 피곤하고 지쳐 도무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모든 걸 다음날로 미룬 채 그는 행락객 사이에 몸을 싣고 2호선 지하철에 올라탔다. 집에 두부와 우유를 사가지고 가야 한다. 야채가게를 가려면 한 정거장 일찍 내려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동선을 짚어본다.

그리고 그날 길태는 일당 12만 원을 조용히 어머니 장순남 앞에 내어놓았다.


금방 돈 나오면 갚으려니까. 좀 있으면 큰돈 번다니까.  알겠지.  


장순남은 자주 아들에게 돈을 빌려 생활비를 충당했다. 청년의 부모는 허술하고 위태로웠다. 여동생은 진작에 집을 나가 못 본 지 삼사 년이고, 최근에는 그나마 일 년째 아파트 시설정비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 직장을 때려치며 게으름을 피울지 모르는 길태의 아비와, 가끔 식당일을 하며 그날그날 생활비를 충당하며 피라미드 사업에 빼진 허영심 많은 하는 애미 장순남이다. 나태한 그들은 아들을 볼모로 생활하는 중이다.

 



다음 날, 박길태는 일어나자마자 폰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 알 수 없는 알림 문자가 온 후로 길태의 폰은 유난히 잠잠하기만 했다. 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통장을 들고 구질구질한 집을 나와 근처 ATM기에 그걸 펼쳐 넣었다.

드륵드륵 드르륵 인쇄되는 소리. 잠시 후 통장이 기기에서 날름 뱉어져 나왔다. 누가 볼세라 ATM기에 몸을 깊숙이 숙인 채 통장 거래내역을 확인한다. 정말 부금1 4,000,000이 찍혀 있었다. 마치 공공장소에서 폰을 보다 생각지도 않은 야동이 튀어나와 흠칫 놀란 듯이 그는 주머니에 서둘러 통장을 집어넣었다. 숨이 막히고 얼굴이 화끈거려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길태는 한 동안 흔들리는 눈동자로 갈길을 잃어 헤매느라 기기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주저하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장 가방 보따리를 들고 할머니 한분이 들어오시자 그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조심히 빠져나왔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부금 4백만 원 사건의 전말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