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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17. 2024
부금 4백만 원 사건의 전말 3
짜릿한 청춘의 사정
이것은 분명 보이스피싱이다.
몇 달 전쯤에 길태는 도서관 열람실 책상에 잠깐 올려놓은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 일로 신분증부터 카드까지 몽땅 새로 발급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눈앞이 깜깜했다. 명의가 도용당해 범죄에 쓰인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그의 눈동자는 셀 수 없는 조바심에 마구 흔들렸다.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경찰서? 아니면 은행? 길태의 심장은 마구 요동쳤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잘못으로 명의가 도용당한 것 같은 자책으로 길태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져만 같다. 생각해 보니 이벤트에 참여하여 상금이나 상품, 토스 포인트 같은 걸 받겠다며 그의 어머니가 여기저기 가족들의 주민번호와 연락처를 남겼던 것도 떠올랐다. 분명 그런 것들 때문에 자신의 명의가 도용당해서 알 수 없는 범죄에 쓰인 것이다.
입금된 통장은 어머니 손에 이끌려 만든 청년디딤돌통장으로 나라에서 월 50원씩 취업준비금을 지원해 준다 하여 만들어놓았던 통장이었다. 물론 청년지원금 50만 원은 청년의 취업 준비에 쓰이지 못하고 6개월 동안 집안 카드값이나 생활비로 쥐도 새도 모르게 쓰였었다. 그리고 몇백 원 남은 채 한동안 잠자던 깡통 통장이었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은행에 전화를 안 해본 건 아니다. 처음에 그 돈이 입금되었을 때 길태는 곧바로 은행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무슨 돈이냐고 물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은행 고객센터라는 시스템이 눈으로 보는 ARS로 바뀌고, 결국 전화번호를 남기면 전화 주겠다는 AI 안내멘트만 나왔다. 길태는 그 마지막 부분에서 망설이다가 번번이 전화번호를 남지기 않고 종료버튼을 눌렀다.
그는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굳은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이불속에서 웅크리고 나오지 못했다.
엄마 나갔다 올텐께, 냉장고에 남은 해장국 데워 묵어라~
그는 이불을 힘껏 움켜쥐며 더욱 깊은 곳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우물쭈물 매일 4백만 원의 동그라미를 수백 번 헤아리면서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그는 아무래도 경찰이나 은행에 신고하면 당장 통장의 돈을 빼앗아갈 것 같았다. 한 달을 초조하게 넘겼다. 하지만 은행에서는 연락이 없었고, 출처도 없이 부금 1로 들어온 4백만 원은 다음 달도 여지없이 11일 12시 12분에 약속이나 한 듯이 그의 통장에 입금되었다.
이제 길태는 그 돈이 임자 없는 돈이 아니라 자신의 몫으로 어딘가에서 뚝 하고 떨어져 나온 것 같아 황홀하기만 했다. 다만 그 돈을 빼서 쓸 용기는 나지 않았던지라 그저 통장의 잔액만 바라보며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는 비밀스러운 일상을 보냈다.
뭔가 잘못되면 경찰이나 은행에서 연락이 오겠지. 그때까지 이 돈은 건들지 말고 그냥 두자.
그는 매일 밤 야동이 아닌 통장 잔액을 생각하며 짜릿한 청춘의 사정을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