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이 사랑에 빠지다. 1
히든 bar the 써클
by injury time Dec 2. 2024
# 이글은 100%허구로 지어진 단편소설임을 밝힙니다.
그러니까 거기가 어디냐면, 이대 정문 바로 앞 스타벅스 건물 4층, 쉽사리 그 입구를 찾을 수 없는 그곳은, 비비안 리나 잉그리드 버그만 같은 고전영화의 주인공들 사진이 메탈 액자에 담겨 50센티 간격으로 줄지어 전시되어 있고, 영화 '접속'에서 봤을법한 - 어깨가 닿을 정도의 좁고 깊고 어두운 계단을 숨이 턱까지 찰 때까지 오르면 비로소 도착하는 그곳, 그곳 마지막 4층 루프탑에는 푸른 파라솔과 한없이 푹신하고 하얀 소파가 ㄱ자로 배치되어 있고, 빨주노초초초파남보보보의 원색 격자무늬의 패브릭이 휘장처럼 햇볕을 가리거나 또는 솔개바람을 가르고 펼쳐져 있는 그곳. 그곳에 그가 그토록 찾던 히든 bar the 써클이 있었다.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파묘가 흥행에 성공하고 요즘 최민식은 차기작을 기다리며 휴식 중이다. 이번 영화를 위해서 체중을 늘렸더니 다시 살을 빼는 게 영 시원찮다. 아, 정말 와이셔츠 단추가 터질 듯이 살이 오른 게 얼마만이더냐, 이번 영화도 성공하면서 앞으로 민식은 박감독의 영화에 몇 편 더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내년에 시작할 영화는 어처구니없게도 우주를 떠도는 외계생명체 Z다. 매번 흉악범이거나 중늙은이거나 조폭역할이었는데 외계생명체 Z라니. 박감독이 알아서 잘 찍어주겠거니 믿을 수밖에. 최민식은 늘 생각 없이 카메라 앞에 섰다가 카메라가 켜지면 갑자기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민식 대신 연기를 해주고 가는 것 같다. 어떨 때는 날로 먹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스로의 연기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
이번 파묘도 처음에는 그닥 캐릭터가 특별할 거 없는 배역이라서 즐기면서 찍자 생각했는데 완성된 화면을 보니 죽자고 열심히 연기한 거 같아 그는 조금 부끄러워졌었다. 빗속에서 험한 것을 피해 뒤뚱뒤뚱 도망치는 지관이라니. 같이 참여한 동료 배우들의 연기에 민식 스스로도 연기 욕심이 났었나 보다.
대체로 생각해 보면 무릇 연기는 카메라가 돎과 동시에 스스로도 모르게 구현된다는 걸 민식은 잘 알고 있다. 온몸에 힘을 빼고 현장에서 최대한 역할에 집중하면 자기도 모르게 최민식에서 중늙은이 수학자 경비원이 되기도 하니까. 박감독과 함께 하는 작업은 늘 새로운 나와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며 민식은 자주 인터뷰를 통해 말한 적이 있다.
내년 초에 새 영화가 시작되니 여유가 생겨 이 참에 본격적으로 몸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좀처럼 몸이 따르지 않는다. 최대한 늦게 일어나는 하루를 보내는 게 최민식에게는 최대의 휴식이다.
1년 전, 한가해지면 한번 찾아오라는 말을 하며 민식의 아내는 불현듯 멜버른으로 떠났다. 멜버른은 처가 식구들이 정착한 도시이다. 아내는 거기서 처가 식구들과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40년을 살았으니 호주에서도 40년쯤은 살고 싶다며 이름도 그야말로 고약한 '애무'도 아닌 '에뮤', 날지 못하는 새 에뮤의 나라 호주로 떠났다. 기약도 없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