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이 사랑에 빠지다. 2

새빨간 인어

by injury time

# 이글은 100%허구로 지어진 단편소설임을 밝힙니다.



얼마 전에는 백상예술대상이 있었다. 컬크림을 발라 촉촉한 곱슬기가 자유로운 최민식. 그가 행사장에 나타났다. 새틴 단추가 더플로 달려있는 미드나잇 블루 턱시도와 버클 스트랩 구두를 신은 민식의 아우라에서 천만관객의 영광이 느껴졌다.

마침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은 김고은이 차에서 내렸다. 고은은 같은 영화에 출연하며 가까워진 젊은 여자 후배다. 요즘 젊은 그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연기력이 짱짱하다. 고은은 블랙 드레스 밑자락을 살짝 꼬집은 채 발칙하게 민식의 팔짱을 끼고 레드카펫을 밟았다. 콧등에 주름 세 개를 달고 가까이 다가온 고은에게서 레몬향이 풍겨 민식은 잠시 움찔했다. 마치 그들은 30년 나이 차는 할리우드 배우 부부처럼 다정하게 손을 흔들며 시상식장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마이크를 들이미는 리포터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레드카펫 라인 밖에서 팬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행사 내내 최민식은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한껏 미소를 지으며 지루한 시상식을 버티고 있었다. 사실 그는 어제 과음을 해서 아직 술이 덜 깬 상태다. 원체 이런 격식 있는 행사가 몸에 맞지 않고, 어색해서 웬만하면 참석을 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파묘가 대상 후보로 올라왔다며 함께 하자는 젊은 후배 여자의 애교 섞인 설득이 있었다. 니코틴 부족으로 연신 나오는 하품을 애써 꿀꺽 삼키느라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어릴 적 연극 하나만 바라보고 민식은 무작정 도시로 나왔다. 극단 뒷방에서 쪽잠을 자며 버티던 날을 민식은 잊지 못한다. 그즈음, 민식은 영애와 몰래 연애를 했다. 영애는 그동안 민식이 들어보지 못했던 맑고 깊은 성량으로 연기를 했고, 극단에서 가장 촉망받는 단원이었다.

서울 여자 영애는 귀가 참 예뻤다. 늘 영애의 찰랑거리는 참머리는 다소곳이 귀를 덮고 있었지만, 고개를 숙이다가 쏟아지는 머리카락을 성가신 듯, 귀 뒤로 넘기면 비로소 나타나는 우윳빛 영애의 단정한 귀. 술자리에서 예술가의 신념에 대해 떠들다가 영애 자신도 모르게 패기 있게 귀에 꽂는 마지막 돛대 한 개피가 너무나 극적이라 민식은 그때마다 영애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반짝거리게 윤이 나는 피어싱 한 영애의 귓불에 혀를 대면 영애의 고개가 움찔했다. 그때마다 미끌거리는 아기 고양이처럼 민식은 영애를 품에 안고 놓치지 않았다. 영애의 날렵한 귓바퀴를 깨물거나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거나 니 소리 좋아,라고 야한 농담을 속삭이면 영애는 더없이 꽉 민식을 움켜쥐었다. 무대 뒤쪽 오래된 커튼 더미에 영애를 쓰러뜨려 눕힐 때마다 삐그덕거리는 마룻바닥 소리가 났었다. 결국 연애는 들통이 나고, 그들의 삐그덕 소리를 들으러 그 동네 생쥐들이 극단으로 모인다며 동료들은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하지만 영애와의 뜨거웠던 첫사랑은 민식이 연극 '에쿠우스'를 시작하면서부터 소원해졌다. 때마침 돈벌이 삼아 시작한 드라마 조연을 시작으로 얼굴이 알려지며 그는 극단을 떠났다. 민식의 사랑은 그렇게 뜨겁게 차오르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민식은 매번 선택의 기로에서 늘 자기 자신을 향해 있었다고 회고했다.


최민식은 제일 앞자리 테이블에 파묘 식구들과 앉았다. 유해진이가 그전보다 얼굴이 좀 탄 것 같아서 이유를 물어보니 베네치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왔단다. 역시 자유로운 인간이다. 민식은 해진이 부러우면서 부럽지 않기도 하다. 민식은 늘 자신의 오래된 그 방, 그 거실에서 지내는 걸 좋아했다. 단지 자신의 집이 베네치아였으면, 자신의 거실이 베네치아의 리도해변가였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시상식 중간쯤 슬로우 락 리듬을 타고 새빨간 의상을 입은 초대 여가수가 무대 뒤에서 하이힐을 흔들며 걸어 나왔다. 화려한 의상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색의 초대 여가수는 우아하고 세련되게 무대를 압도했고, 민식은 무섭게 그 여가수의 목소리에 사로잡혔다. 그 초대 가수를 눈앞에서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요즘 인기 있는 뮤지션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적도 없었고, 눈앞에서 어린 여자애가 기가 막히게 녹아드는 뇌쇄적인 노래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경이롭고 놀라웠다. 민식은 파닥거리며 그 새빨간 인어에게 사로잡혀 심장이 까맣게 타버리는 순간을 맛보았다.


한동안 그 어린 여가수가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민식은 시상식 이후 그 여가수의 노래를 찾아 듣고, 그 여가수의 행적을 쫒곤 했다. 집안에서 민식은 거의 얼룩무늬 파자마 차림으로 필립모리스 연초를 입에 물고 널브러져 있었고, 면도도 일정이 있을 때만 했으니 별수 없는 중년의 끝자락으로 관통하고 있었다.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최민식이 사랑에 빠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