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00% 허구로 지어진 단편소설입니다.
신사역 5번 출구.
영애는 민식을 데리러 신사역까지 나와 있었다. 민식은 영애의 얼굴이라도 보겠다며 늦은 밤 연락을 해왔다. 민식은 극단 정리를 하고 나오는 중이었다. 금방 출발한다고 하던 민식은 결국 지하철이 끊겨서 고속터미널에서부터 걸어오는 중이라며 헐떡거렸다. 영애는 늘상 길을 잃고 헤매는 민식이 불안하여 원룸에서 10분 거리 신사역 5번 출구까지 나와 있었다.
가을바람이 쌀쌀하여 영애는 검정 스웨터를 꽁꽁 여미고 신사역 5번 출구 KB증권 골목 앞에 서있었다. 지하철이 끊기고, 심야버스만 간간히 오고 가던 가을 막바지, 깊고 깊은 밤이었다. 신사역이라는 곳이 아무래도 골목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아귀찜 냄새와 소주 냄새가 뒤섞여 복작댔을 테지만 영애가 서 있던 곳은 대로변 바로 앞 이면도로라 오고 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시계를 보고, 두리번거리며 이리저리 우왕좌왕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 곳에 그냥 서서 기다리기에는 뻘쭘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이따금 골목에서 차가 빠져나오고, 들어가기도 하는 그런 거리라서 영애는 불안하게 서성거렸다.
그때, 검은색 BMW가 골목에서 나오는 걸 보았다. 영애는 조금 안쪽으로 BMW를 피하고 서있었다. 한 5분이나 지났을까. 또 그 BMW가 다시 영애 앞으로 지나갔다. 영애는 무심히 다시 이동하여 골목 안쪽으로 차를 피해 서있었다. 서서히 BMW가 지나가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 그때까지 민식이 나타나지 않자 불안해진 영애가 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누를 때쯤이었다. 다시 그 BMW가 골목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영애가 서있는 근처로 스르륵 다가와 멈췄다. 영애는 통화 버튼을 누르다 말고 작은 뿔테 안경 사이로 차 안을 살폈다. 잠시 후 차 창문이 열렸다.
- 저기, 죄송합니다. 혹시.. 시간 되면 나랑 술이나 한잔 할래요? 만나려던 사람한테 무슨 일이 생겨 못 오는지 연락이 되지 않지 뭡니까. 허허.
난생처음 보는 젊은 여자에게 술이나 한잔 하자니. 영애는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서 못 들은 척하고 슬슬 걸어 나가 자리를 피하는데 그 차가 영애를 조용히 쫓고 있었다. 영애는 다시 한번 차 안을 살폈다.
- 아니에요. 아닙니다.
영애는 단칼에 거절을 하고 뒷걸음질 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저 멀리서 민식이 야상잠바를 휘날리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성큼성큼 걸어오는 게 보였다. 영애는 용케 길을 찾은 민식을 보자마자 반가움에 달려가 와락 야상점퍼 안에 안겼다.
- 다행이야. 못 찾는 줄 알았어.
BMW는 사라졌다. 초조하고 불안했던 영애는 그의 야상점퍼 안에서 BMW를 생각한다. 검은색 BMW, 보조석 창문이 열리고, 보조석 시트 목받침대에 팔 하나를 걸치고, 고개를 영애 쪽으로 쭉 뺀 체, 멋쩍은 듯 말을 거는 중년의 남자가 영애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빛을 잃어가는 피부결, 숱 없이 제멋대로 자란 희끗희끗 머릿결. 누가 봐도 콜라겐뿐 아니라 호르몬까지 바닥을 칠 것만 같은 중년의 남자. 영애는 오랫동안 그날의 그 중년의 남자를 생각했다. 그는 자신말고 또 다른 사람을 찾았을까? 같이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도 있었는데. 미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술 한잔 할 사람이 없었을 그의 궁핍한 삶이 궁금해지며 처음 보는 그 남자에게 연민 같은 생각이 줄곧 떠나지 않았다.
- 아니야, 정말 그 아저씨, 쓸쓸해 보였어.
오지랖이라며 누구 하나 그 남자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영애는 늘 그 BMW 남자를 두둔하기 바빴다. 모두가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그 남자를 영애 만은 기억하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는 모르지만 영애는 알 수 없는 그에 대한 연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