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이 사랑에 빠지다. 7

얼룩무늬 수면바지

by injury time

# 이 글은 100% 허구로 지어진 단편소설임을 밝힙니다.


민식의 아내 벨라는 민식과의 결혼 생활 내내 오래되고 귀한 고가구들과 소품들을 하나하나 수집해서 라테라스 안을 채워 넣었다. 최민식은 세상 잘 나가던 시절, 지인의 소개로 아내 벨라를 알게 되었다. 사실 알고 보면 아내 벨라 쪽에서 먼저 민식과의 만남을 추진했다고 한다. 아마 벨라는 한눈에 민식의 가치를 알아챘을지 모르겠다. 진취적이고 우아했던 벨라는 민식을 고가구 수집하듯 그렇게 자신의 옆에 두려고 했다. 민식 스스로도 그 당시는 이제 막 떠오르는 신예 배우였기에 상위 5% 안의 재력을 가진 벨라의 관심과 호의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결국 민식은 계절이 채 바뀌기도 전에 벨라의 화려한 라테라스 안으로 대담하게 뛰어들어갔다.

벨라에게 남편 최민식은 그 어떤 골동품보다 소중한 자랑거리였다. 벨라가 원하면 상감청자매병처럼 어디서든 잠든 사물처럼 영혼 없이 앉아있어야 했다.

차츰 민식은 결혼 생활 몇 년 만에 싫증을 느꼈고, 다툼이 쌓였고, 결국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서로의 사생활을 묵인하며 보냈다. 그들에게는 이내 추억도 사연도 미련도 남지 않았고, 이제 벨라의 흔적은 라테라스에서 사라졌다.


최민식은 아내 벨라가 없는 거실에서 살집 있는 퉁실한 엉덩이를 박박 긁으며 모니터를 열었다. 요즘 빠져있는 여가수 <히든>. 민식은 히든의 생방송 공연을 하루 종일 켜놓고 생활한다. 역시 목소리가 딱 민식이 좋아하는 톤이다. 우아하고 다정하고, 사근사근하고, 그러면서 싱잉볼 소리처럼 울림이 있어 가까이에서 그 목소리를 들으면 귓가에 파동이 느껴질 것만 같다. 게다가 파르르 떨리는 조개 같은 작은 입술과 오른쪽 보조개가 귀여운 가수 히든을 민식은 추앙하고 있었다.

백상예술대상 초대가수로 히든을 처음 실물로 영접한 이후 민식은 히든의 영상을 모조리 찾아보고 있다. 초창기 신인일 때의 앳된 예능프로그램의 얼굴과 공연할 때의 성숙한 모습에 민식은 흐뭇하다. 어쩐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옛날 영애를 떠오르게 하는 아이다. 최근 들어 이토록 민식을 뜨겁게 하는 일도 없었다. 몸 안의 피가 꿈틀대며 민식의 딱딱하게 굳은 심장을 관통했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녹고 있었다. 영화 촬영을 하지 않을 때는 늘 하품이 날 정도로 매사에 나른하고, 무심하고, 지겹고, 무료하고, 시답잖게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히든은 민식의 식어빠진 심장에 따듯한 피가 돌게 만들었다. 히든을 보고 있으면 대견할 정도로 용감했고, 성숙했고, 경이로웠다. 민식은 히든의 젊음이 탐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추앙하는 히든을 위해 민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녀를 조용히 응원하며 남몰래 스스로에게조차 그녀에 대한 흠모함을 숨기고, 지나간 영상을 찾아보거나, 그녀의 기사를 탐색하는 일이었다.

최근 히든의 선정성 논란이 가시화되면서 그녀는 온몸으로 대중의 악플에 시달렸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민식의 걱정과 염려가 쌓여만 갔었다.

그리고 히든이 며칠 전 굳건한 모습으로 생방송에 나와 공연을 하는 모습이 트리거가 되었다. 민식은 뭉클하기도 하고, 뮤지션으로 응원하고 싶기도 하고, 같은 동료로서의 연민과 애정이 동시에 마음을 움직였다. 이건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민식은 자신보다도 더 의연하게 대처하는 히든의 눈빛과 태도에 숙연한 생각이 들었다. 민식의 과거 사생활 논란이 있었을 때를 생각하며 히든에게 같은 길을 가는 동료로서, 선배로서 어깨 한번 두드려주며 격려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 민식은 용기를 내고 히든의 연락처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 저 배우 최민식입니다.


처음 그녀와 통화가 연결된 날, 최민식은 최대한 목소리에 정중함을 담았다.


- 예예예. 선생님. 너무 영광입니다. 건강하시죠?

- 그럼요. 히든 후배 공연 보면서 재충전 중입니다. 요즘 안 좋은 구설수에 오른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나 원 참. 어찌 그런 일이...

- 어머, 선생님.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요, 선생님, 저 기억 못 하시나요? 어릴 때 제 기타 케이스에 사인해 주시고, 제가 수면바지 선물도 드렸는데. 헤헷

- 엇, 얼룩무늬 잠옷? 그럼 그때 그 어린 학생이 히든 후배라는 말인가요?

- 예. 맞아요. 그때 버스킹하고 돌아다닐 때였어요. 제가 레이디 가가 다음으로 좋아하던 분이 바로 최민식 선생님이었서가 지구요. 헤헷

- 이런 인연이 다 있구나. 그러고 보니 모습이 익숙하긴 하네.

- 선생님, 말씀 편하게 하셔요. 그리고 이렇게 전화까지 주시고 영광입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 아, 정말 반갑네. 그 얼룩무늬 잠옷 지금도 잘 입고 있습니다.

- 햐, 정말요? 정말 존경하는 선생님께 제대로 제가 식사라도 한번 대접하고 싶습니다.

- 아니, 제가 사드려야죠. 하하하


전화기를 접으며 민식은 안도의 한숨을 깊이 쉬었다. 아니, 대체 그 어린 여중생이 커서 히든이 되다니. 그동안 영상을 그렇게 보고 또 보았는데 히든을 못 알아보다니. 하기야 그 여학생을 만난 건 채 10분도 안된 시간이었으니 잊어졌을 인연이었다. 하지만 익숙한 음성과 분위기와 느낌이 어딘지 모르게 히든에게서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민식은 통화를 끝내고 소파에 깊숙이 기댄 채 필립모리스에 불을 붙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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