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체취 7.

명품 아파트

by injury time


붉은 살덩이로 이미 익숙해진 내 그림 속 황상미 여사.

세상 반짝거리는 요란한 핸드폰을 달랑거리며 여자는 구두에 붙은 뭔가를 털고 서있었다. 여자를 못 본 척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들어가 최대한 멀찍이 몸을 피했다.

"여기 살아요?"


황상미가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곁눈질로 거울에 황상미가 비쳤다. 여자는 나를 아래위로 훑더니 “동네 도둑고양이들 때문에 못살겠어. 누가 밥을 주는지 지하 주차장까지 처 돌아다니네. 이거 봐. 고양이 똥. 밟았잖아.” 라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나 들으라는 말인 것 같았고 맞장구를 치라는 말 같았다. 하지만 나는 황상미 구두에서 떨어지는 것들을 지켜볼 뿐이다.


‘저건 고양이 똥이 아니라 씹다 버린 껌 같은데...’


얼마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숨 막히는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왔다. 서둘러 5층 복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내 몸이 허공을 향해 허우적거리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진한 향수 냄새에 어지럼증이 생긴 게다. 나는 방향 감각을 잃고 어두운 복도로 내 집을 찾아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도무지 내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여자의 사나운 기운에 내 몸은 굳어 갔고, 몹시 불쾌하고, 막막했다. 고질적인 증상인 어지럼증과 오심이 시작되었다. 어둡고, 좁고, 길기만 했던 복도였다.


틱틱 또르르르


겨우 찾은 내 집 앞에서 서서 숨 막히는 목을 쥐어짜며 비번을 누르고 있었다. 그때, 손잡이를 잡고 돌리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내 집 문고리를 잡아챘다. 그리고 나를 밀어재치고 나 대신 내 집 현관으로 곧장 들어갔다. 황상미였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나를 언제부터 뒤쫓았는지 알 수 없다.


황상미는 껌 밟은 구두를 벗지도 않은 채 구둣발로 내 집으로 쳐들어왔다. 마구잡이로 들어선 여자는 오만한 체취를 양껏 풍기며 양팔을 단단히 꼬아 잡고 방 한가운데에 섰다. 주인 대신 먼저 들어간 황상미 뒤를 나는 쭈뼛거리며 따라 들어갔다.


“아주머니, 뭐... 지금 왜 이러세요?"


“쳇, 여기였네. 말로만 듣던 쥐새끼 집이?”


황여사는 구둣발로 싱크대 앞에 깔린 발매트와 그레이프의 먹이통을 툭툭 치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뭐 있을 건 다 있네. 에어컨에, 환기 유니트에, 이거 다 누구 돈으로 설치했는지 알아, 총각?”


“아니, 무슨 일이냐고요? 경찰... 부르겠습니.... 다. 나가... 주세요.”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방망이질 쳤다. 내 집에 들어온 침입자에게 두려움을 느껴 내 숨통은 제대로 열리지가 않았다. 두려움을 넘어 대꾸를 할수록 위화감에서 절망으로, 전율과 경악으로 내 목은 스스로 조여왔다.


“이거 봐, 이거. 이런 거 처먹으면서 처죽지도 않아, 끈질긴 족속들”


황상미는 싱크대 수납장에 넣어놓은 간장, 설탕, 조미료 통을 뒤져 껌 밟은 구둣발로 휘저었다.


“여기 이렇게 숨이 있었던 거야. 말로만 듣던 쥐새끼가. 쥐약을 줘도 죽지도 않아, 이것들은. 아파트 지어질 때 쥐구멍을 싹 쓸었어야 하는데, 너 같은 것들 때문에 우리 성동구의 꽃, 응, 이 명품아파트 격이 떨어지는 거라고. 내가 성동구에 얼마나 많은 기부를 하고, 쓸고 닦고, 쥐새끼 치우려고 가랑이 찢어지게 힘썼는 줄 알아? 내가 왜 너네들까지 먹여 살려야 하는데, 일도 안 하고 자빠져 처 놀기나 하는 놈들한테. 돈 떨어지면 기어 나와 불쌍한 척 징징대잖아. 쫌 눈앞에서 사라져, 내 눈앞에 기어들어오지 말고.”


너무나 모욕적인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거나 구걸을 한 적이 없다. 있는 만큼만 쓰고, 있는 만큼만 먹고 살 뿐이다. 내가 스스로 저들과 더불어 살기 싫어서 혼자의 섬에서 지낼 뿐이었다. 욕심 따위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범법을 저지른 적은 더더욱 없다. 매번 그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여긴 내 집이야! 내 집, 나가. 그런 도움 애초에 필요하지도 않다고.”


내 목소리가 모처럼 모질고 앙칼지게 튀어나왔다. 나도 나에게 놀랄 정도였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오만한 체취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