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체취 8.

그루밍

by injury time

황상미는 물러서지 않았다.

“니들은 다 표시가 나. 엘리베이터 타는 순간 알아챘어. 니가 쥐새끼라는 걸. 내 코가 예술이거든.”


여자는 집안 구석구석을 구둣발로 들추기 시작했다. 그러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그림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엇, 붉은 살덩이의 그림... 여자의 얼굴색이 하얗게 바뀌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뭐야?? 너... 정체가 뭐야?"


"아니, 그건 그러니까... 뭐냐면..."


나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우선 그림들을 잡아채려고 안간힘을 썼다.


"너 변태야? 스토커야?"


여자는 은밀한 사생활이 들통난 거에 대한 불안감에 더욱더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나는 황상미의 재킷 자락을 잡고 흔들어댔다. 하지만 황상미는 나의 거센 저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억센 살덩이로 내 명치를 내치며 나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나는 맥없이 쓰러졌다. 여자의 눈동자는 이미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널 구하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어. 뭘 어디서 본거야? 이 변태 새꺄!"


"저는 몰라요. 그냥 보였... 어요. 죄송합니다."


"이 변태새꺄, 넌 죽어야 해."


여자는 달려들어 나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여자가 길길이 날뛰자 숨어있던 그레이프가 울부짖었다. 여자는 녀석의 목덜미를 사납게 잡아챘다. 그리고 여자가 그레이프를 베란다 창문으로 여지없이 내동댕이치는 순간, 나는 이성을 잃고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안 돼!”



*



한참을 침대에서 뒤엉켰다. 웬일인지 덩치 큰 여자 밑에 깔려서도 용케 고양이처럼 탄력 있게 미끌거리며 빠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여자는 내 멱살을 다시 잡아끌어 육중한 체중으로 눌러 제압했다. 내 몸은 뼈 마디마디에 공기를 가득 담은 듯 용수철처럼 요동쳤다. 여자는 내 가슴 위로 올라서 살덩이를 흔들며 요동치는 내 가느다란 목뼈를 쥐고 흔들었다. 목을 누르는 손아귀의 힘에 나는 발버둥 쳤다.


눈에 실핏줄이 터졌는지 세상이 점점 붉어져갔다. 핏빛 시야 사이로 베란다 벽에 내동냉이 쳐져 고개도 못 들고 비틀거리는 그레이프가 보였다. 나는 허우적거리다가 잡히는 대로 여자의 머리통을 갈겼다.


아수라장이었다. 그리고 결국 굴러다니던 4B연필이 손에 잡히는 순간 여자의 턱 밑에 그 연필을 정통으로 쑤셔 넣었다. 기묘하게도 그 순간 나무 냄새와 흑심 냄새가 고소했다면 미친걸까? 무딘 연필 끝이 살을 뚫고 힘줄을 가를 때마다 우두둑 살이 찢기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쥐고 있던 주먹 끝이 닿을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더더더 깊숙이 연필을 목에 쑤셔 넣었다. 무딘 연필이 뼈 끝까지 닿자 턱턱 막히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그때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뼈 사이를 비집고 혈관을 따라 연필을 돌려 비틀었다.


팽팽한 고무줄을 당기듯 여자의 숨통은 팽팽하게 당겨졌다 수축했다. 그럴수록 나는 숨어 있던 손톱을 드러내

며 여자의 목을 누르고 연필을 뽑아 다시 내리꽂았다. 연필이 우두둑 부러져 뒤틀어졌다.

사방으로 여자의 오만한 체취가 역겹게 튀어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자의 핏방울이 내 눈두덩이, 입술 위로 뚝뚝 떨어졌다. 여자는 내 가슴 위에서 발버둥 치다 침대 벽에 부딪히며 쓰러졌다. 자꾸만 여자의 피가 내 입술에서 입안으로 흘러들어 갔다. 손등으로 피를 쓸어내렸다. LED 불빛에 핏자국이 형광 빛으로 번졌다. 베란다 문턱에 벗어놓은 양말처럼 반쯤 걸려 기운 없이 죽어가는 그레이프가 보였다. 컥컥거리며 피를 삼키는 여자의 마지막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사포날처럼 뾰족한 돌기들이 자란 혓바닥으로 나는 오랜 시간 내 몸의 더러운 것들을 살뜰히 그루밍하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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