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하나로마트에 장을 보러 갔었다. 하나로마트 신규회원에 가입하면 울샴푸를 준다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내 이름으로 회원가입이 되어 있어서 그냥 지나치려는데 남편이 자기 이름으로 가입하고 울샴푸를 받자고 한다. 짜증이 확 났다. 사람도 많고 회원 가입하는데 절차도 복잡했다. 게다가 남편은 서명만 하고 구매한 물건을 포장한다며 가버려서 혼자 남편의 가입신청서를 작성했다. 정수리가 뜨거웠다. 울샴푸 하나 받으려고 남편 이름으로 가입하는 꼴을 직원이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어느 노년의 여인이 안내창구에서 가방에 있는 두부를 꺼내며 투덜거렸다.
"아니, 이 풀무원 두부 1+1이라서 샀는데 위에 보이는 거는 유기농이고 밑에 있는 두부는 일반 두부잖아. 어떻게 고객들한테 이런 사기를 쳐!"
여인은 상당히 억울하신 듯, 환불을 요구했다. 그러더니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넓은 레이스 챙모자를 벗고 이마에 땀을 닦았다. 검버섯 가득한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고객님, 이 제품은 그래서 싸게 파는 거죠. 잘 보고 사셔야죠. 환불해드려요? 영수증 보여주세요"
직원은 건조한 목소리로 환불 절차를 밟았다. 여인은 벗겨진 매니큐어가 발라진 손톱의 손을 몹시도 흔들며 낡은 루이뷔통 지갑에서 꼬깃꼬깃한 영수증을 꺼내고 있었다.
나는 여기까지 지켜보다가 내 일이 마무리되어서 울샴푸 한통을 받아 들고 남편을 찾았다.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나이가 들면 두부에 집착을 하는 걸까. 친정엄마는 식사 때마다 두부를 꼭 챙겨 드신다. 고기는 못 먹어도 식물성 단백질인 두부라도 먹어야 한다는 나름의 루틴을 지킨다. 내가 장을 봐가지고 갈 때도 항상 외치신다
"풀무원으로 사와, 풀무원"
나는 결혼하고 장을 보면서 그때서야 알았다. 두부를 잘라서 파는 곳이 아직도 있다는 걸. 포장 안되고 검은 헝겊으로 덮인넓은 판두부를 칼로 쓱쓱 잘라서 일회용 비닐봉지에 넣어주는 두부장사를. 친정엄마는 그 두부를 혐오하는 듯했다. 집안이 쫄딱 망해서 온 식구들이 한 푼이라도 벌어서 빚을 갚느라 정신없을 때도 엄마는 풀무원 두부만을 고집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라고 했던가, 우리 집은 하루하루 눈뜨면 빚이 뻥뻥 터졌었다. 정말 모든 게 뻥이었으면 좋았겠다는생각이 들었었다. 상가 건물이 사라지고, 집이 사라지고, 전세에서 월세까지 끝도 없이 떨어졌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연체된 카드사 직원이 집 앞에서 나를 기다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