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타이타닉 12

오, 나의 타이타닉

by injury time

배 주인을 수소문했다. 배 주인은 뭐에다 쓰는 건지 몰라도 이제는 자기는 쓸모없어졌으니 가지고 싶다면 공짜로 가져다 쓰라고 후한 인심을 베풀었다. 나는 몇 번이나 배 주인이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길로 배 수리에 들어갔다. 먼 바다까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낡아 있는 배를 수리해 완성하기란 만만한 게 아니었다.

배 밑바닥에 엄청난 홍합이 달라붙어 그걸 하나하나 떼어내는 일부터 시작이다. 구멍 난 부분은 시골집 수리를 하고 남은 장판을 녹여 덧대었다. 이제 방수는 완벽하다. 배 밑동에 연료탱크를 손보고 스크루에 기어 오일도 채워 넣었다. 부서진 갑판은 방부목 판넬을 구입해 와서 반듯하게 대패로 깎아 아귀를 맞추었다. 어설픈 못질은 배에 구멍을 뚫어 바닷물이 들어올 수 있다. 나는 되도록 아귀를 맞춰 단단히 빈틈을 틀어막았다. 선실에 있는 추진기와 방향키는 틀어져서 도저히 운행이 어려웠다. 마을 이장님의 도움으로 나는 가장 중요한 조정실을 하나하나 손보았다. 이장님은 비틀어진 방향키의 중심을 방위도를 펼쳐놓고 바르게 세워놓았다. 엔진 하부에 아연판도 교체를 하고 물속에 잠기는 흘수 부분은 방수 페인트로 마무리했다.

낡은 어선을 수리하는 한 달여간의 기간이 소요되는 동안 내 통장에는 잔액이 0원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아내와 아들은 나를 찾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마지막 현금을 탈탈 털어 금괴가 수장되어 있는 바다로 나갈 만큼의 가솔린을 연료탱크에 채워 넣었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에게 안겨 줄 금괴를 찾아 내 배를 바다로, 바다로 밀고 나갔다.


이제야 봄이 막 끝나가고 있었지만 햇볕은 한여름처럼 뜨겁게 바다를 달구었다. 날을 잘 잡았는지 파도도 잠잠하게 내 첫 항해를 지켜보고 있다. 갈매기 떼의 길 안내를 받으며 드디어 해안가를 떠나 바다 멀리 금괴가 수장된 곳 즈음에 내 배는 당당히 도착했다. 비안도가 손에 잡히는 곳이다. 이제와 보니 비안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랫동안 파도에 휩쓸려 깎아지른 절벽과 그 사이 작은 소나무 숲이 숨 쉬고 있는 비안도. 고승호는 바다로 잠기면서 저 비안도의 절경을 눈에 넣었을 것이다.

어느새 고질병처럼 눈의 다래끼가 생겼다 좋아졌다 반복하는 동안 시력은 점점 나빠져 갔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앞이 또렷하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내 계획을 실천에 옮긴다. 어깨와 척추를 쫙 펴고 흉부에 온 힘을 모으고 발가락이 기역자가 되게 꺾고. 나는 망설임 없이, 주저 없이 바다로 뛰어든다. 바다 속 깊이 수만 수 천 개의 별빛이 반짝이는 하얀 진주가 보인다. 나는 그 하얀 진주를 잡으려고 손을 뻗어 더 깊숙이 더 깊숙이 타이타닉 안으로 들어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