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온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녔다. 평생 만들어놓은 성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는 그저 내가 만들어놓은 성이 조용조용 잠들어 있었다. 더 이상 변화하지 않고 내가 명예퇴직을 한 후부터 그대로 정박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소주를 연거푸 목구멍에 쏟아 부으며 무너지는 성의 서러움을 이기려 안간힘을 썼다. 한참을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구토를 하고 머리를 찧고 있을 때였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잘 빠진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달려와 정차했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이 아까 그 파티장에서 만난 그 새끼와 함께 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아들은 어깨를 쭉 편 채 의젓한 모습으로 그 새끼한테 인사했고 그 모습을 아내는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마치 단란한 가정의 모습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차마 그 골목을 나올 수 없어 한참을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상가 귀퉁이에서 조바심을 내며 웅크리고 있어야만 했다. 다래끼 난 눈으로 본 나의 성은 점점 일그러져 갔다. 절망의 눈물 한 방울이 일그러진 모습을 담고 내 발등에 뚝 떨어졌다.
그 길로 나는 집에 들어가 나의 전 재산인 퇴직금 신탁통장과 어제 막 완성한 패들보트와 보물지도를 챙겨 나왔다. 집안에 아내와 아들이 있었지만 내 행동에 개의치 않고 각자 방에서 옷이나 갈아입고 있었다. 나는 투명 인간이 된 듯 집안을 잠깐 휘젓고 다니다가 집 밖으로 빠져나와 근처 한강 어귀 강물에 모형 보트를 띄웠다. 내가 만든 모형 배를 직접 물에 띄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에 놓아준 패들보트는 한 방울의 강물도 새어 들어가지 않고 씩씩하게 물살을 따라 떠내려갔다. 패들보트가 고향인 미시시피 강까지 떠내려가길 바라며 나는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모든 게 선명해졌다. 나는 다시 장항으로 향했다. 장항은 얼마 전 그대로 거기 엎드려 있었다.
나는 계획이 있었다. 얼마 전부터 생각해둔 계획이었다. 이렇게 빨리 실행에 옮길 것이라는 생각하지 못했다. 항구 끝에 있는 작은 해안가의 후미진 민박에 당분간 묵기로 했다. 민박은 해변 바로 앞에 있는 집이었는데 방문을 활짝 열면 바로 하얀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그런 방이었다. 밤에는 무섭게 들끓는 파도 소리에 좀처럼 잠을 자기 힘들 정도로 바다와 가까웠다. 하지만 그 민박집은 퇴직금을 털어 구입한 그동안 가족과 살던 착한 분양가 아파트보다 더없이 안락했다. 나는 집에서 가져온 보물지도를 방문에 판판하게 쓸어서 정성껏 붙여놓았다. 주름이 눈가에 자글자글한 민박 주인은 혹시 내가 자살하러 온 것은 아닌가, 해서인지 수시로 내 방을 들여다보았다. 민박 주인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나는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자주 말을 건넸다.
다음 날부터 나는 바빠졌다. 우선 작은 배 한 척을 사야 한다. 이제는 나 혼자 거뜬히 먼 바다까지 운행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해안가의 자갈을 밟으며 금괴가 묻혀있는 바다 속 어디를 가늠할 때쯤 눈앞에 오래되어 여러 군데 삭아가는 배 한 척을 발견했다. 그 배는 흔히 보이는 작은 어선이었는데 이미 한참 동안 항해를 관둔 것인지 금방이라도 쓸어질듯 비스듬하게 모래밭에 누워있었다. 내 계획을 충분히 수행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