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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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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May 12. 2021

73년생 김지영입니다만 1.

나는 그 유명한  83년생 김지영은 아니다. 그 김지영은 나보다 10살은 젊고 그만큼 예쁘고 아이도 잘 낳고 게다가 남편도 잘생긴 공유였다.


남편이 오늘도 오피스텔에서 잔다. 그 곳이 편할 것이다.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늦게까지 게임하며 놀 수도 있을 테니 혼자 오피스텔 소파에서 지내는 것이 편할 것이다.


남편은 나이 50이 넘도록 딱히 직업이 없다. 결혼한 지 13년째인데 그동안 꾸준히 뭔가를 한 적이 없다. 처음 우린 인라인스케이트 모임에서 만났다. 그때 그게 유행이었고 인라인 용품 정보도 알고 강습도 받을 겸 해서 서울지역 인라인을 사랑하는 모임에 가입하고 정모에서 만났다. 한강 반포지구 제3주차장 앞 세븐일레븐 편의점 앞에서 만난 인사모 회원들 중에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호사가였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그만큼 스케일도 커서 회원들에게 간식을 쏘는가 하면 뒤풀이까지 추진하는 리더십도 있었다. 여러 경쟁자들을 채치고 나는 그와 오랜 연애를 하고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처음 내가 봤던 모습의 남자는 아니었다. 아니. 딱 그 모습 그대로가 맞을지도 모른다. 매사에 놀기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대책 없이 착해서 자기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주 사기를 당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용을 당하면서도 허허 실실 웃는 그런 실속 없는 사람이었다.


결혼 13년째인데도 생활비를 변변히 가져다주는 적이 없었고 카드값이 부족하거나 목돈이 나갈 일이 있으면 늘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야만 했다. 처음 전셋집도 시부모님의 도움으로 얻을 수 있었고, 그 후로 푼푼이 벌어오는 돈으로 그때그때 해결하면서 살아왔다. 그렇다고 내가 딱히 생활력이 강한 편이 아니고 늘 그림 그리기나 책 읽기, 글쓰기로 시간을 보내는, 나 역시 가계에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남편과 나는 늘 돈이 없어 시댁 손을 벌렸고 그런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


"이제 제발 제대로 된 곳에 출근을 해서 단돈 이라도 벌어오면서 가장으로서 역할을 좀 하지 그래"


내가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걸 늘 잔소리해도 남편은


"난 이게 편해. 돈 없는 사람들이나 직장에 다니는 거지, 우린 부모님이 계시는데 왜 힘들게 돈을 벌어"


라며 너무나 당당히 자신이 부모님 빨대로 사는 걸 정당화시키곤 했다.


게다가 남편의 이런 무능함에 더해져 우리 부부는 아이가 13년째 없다. 남편의 정자 활동성이 낮고, 나 역시 난소가 한쪽이 막혀서 자연임신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다. 인공수정을 세 차례나 했는데 실패하고 3년째 포기 상태였다. 아무래도 아이가 생기면 남편이 책임감 갖고 가정에 충실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불임 크리닉에 갔다 왔다. 오랜만에 다시 검사를 해보니 자궁 내막에 혹이 여러 개 있어서 우선 그걸 제거하고 인공수정을 하자고 한다. 더럭 겁이 났다. 검색을 해보니 암일 가능성도 있었다. 서둘러 수술 날짜를 잡았다. 1박 2일이면 퇴원이라고는 하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환자와 보호자까지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럼 엄마한테 병원비 좀 달라 그래야겠다."


수술 일정을 남편에게 알리자 남편이 처음 했던 말이다. 내가 아프고 수술해야 한다고 하면 어머니가 돈을 보태주실 것이고 조금 뻥튀기를 해서 넉넉하게 타내자는 게 남편의 계획이다. 그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차사고가 났는데 합의금이 필요하고 어머니한테 돈을 뜯어내서 나랑 반반 나누자는 플랜을 함박웃음 지으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얼마 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지영아, 너 어디 아프니?"

"아니에요. 어머니. 저 괜찮은데 누가 아프데요?"


나는 일부러 남편 들으라고 시치미를 뚝 떼며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여보가 돈 벌어와서 병원비 내!"


오늘도 나는 이렇게  남편을 오피스텔쫓아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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