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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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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May 13. 2021

73년생 김지영입니다만 2.

수술 이틀 전이다. 환자는 병원에서 직접 코로나 검사를 하기에 하루 전인 오늘 검사를 하고 다. 코와 입, 두 군데로 검사를 하는데 면봉이 꽤 깊이 들어가서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검사였다. 남편이 검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자기는 도저히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엄살을 떤다. 남편은 집 근처 보건소에서 검사를 해야 한다. 병원에서 나와 보건소로 향해야 하는 차가 갑자기 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왜 보건소로 안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이따 가려고"


남편이 나를 집에 내려주고 바삐 어디론가 떠나갔다. 설마 검사 안 하고 도망가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내일 입원할 생각을 하니  써니도 애견호텔에 맡겨야 하고 짐도 싸야 하고 바쁘다. 반나절을 집안 정리와 입원할 때 필요한 짐들을 챙기며 보냈다. 한밤중이 되어도 남편은 오지도, 연락도 없다. 나도 오기가 생겨 연락을 하지 않고 일찍 잠이 들었다.


다음날, 심란해서 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11시까지 병원으로 들어와 수속을 받고 입원실에 입실이다. 사라진 남편을 내버려 두고 혼자 커다란 짐가방을 들고 택시를 탔다.  입원하러 가는데 이렇게 혼자 가는 여자는 나밖에 없으리라 생각에 서러움이 북받친다. 정신없이 입원절차가 진행되고 수술 전 검사와 수액까지 손목에 꽂고 좀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지영아, 병원 들어갔니? 우리 성준이가 어지럽고 토할 것 같고 몸상태가 안 좋다고 어제 코로나 검사를 못 받았대. 어쩌냐? 보호자 없어서.. 나라도 가랴?"


어머니는 아들의 거짓말에 맞장구를 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뒤에서 벌벌 떨고 있을 남편을 생각이니 수술이고 임신이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손목에 꽂아진 수액 바늘을 보며 내 몸이 우선이지 하는 생각에 이를 꽉 물었다.


"어머니, 혼자 있을 수 있어요."

"그러냐? 에이, 내가 갈려고 그랬는데 지금 코로나 검사하면 또 내일 결과가 나온다고 하고... 코로나가 문제야.. 문제.."


코로나가 문제가 아니라 당신 아들이 문제예요. 나는 속으로 이런 말이 절로 나왔지만, 일찍 돌아가신 우리 친정부모님을 생각하며, 그동안 당신 아들 못지않게 나를 딸처럼 여겨주시는 어머니에게 연민이 느껴져서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결국 남편은 퇴원하고 이틀이나 지난 뒤에 얼굴을 비쳤다. 그리고 다시 남편을 오피스텔(어머니가 경매로 넘어가는 걸 수완 좋게 잡아놓은)로 쫓아버렸다.


수술은 잘 되었고 다행히 암도 아니라고 했다. 3개월 뒤 인공수정 계획을 세우고 남편에게 다시 한번 질책을 한다.


"이번에는 꼭 임신 성공을 하고 자기도 이제 그만 그 사무실에서 나와 택배일이라도 해서 나랑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하지 않겠어?"

"그래. 이번에는 꼭 성공하자."


남편이 예전과는 다른 의지를 보여 기대가 됐다.  


5개월 뒤, 남편은 근처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배달일을 시작했다. 아줌마들에게 싹싹하여 꽤 인기가 많았다. 적은 돈이었지만 남편이 벌어다 주는 한 달 250만 원은 소중히 우리 가족을 촉촉이 적셔 줄 마중물이 되었다. 그렇다. 내가 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내가 다닌 불임 크리닉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48살에 임신 성공한 사례가 없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시댁이나 우리 친정 언니도, 불임 크리닉에서도 모두 축하하고 내일처럼 기뻐했다. 나는 남편이 힘든 배달일을 시작한 것도 무엇보다 기뻤다. 시댁에서는 아들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그나마 시아버지는 전적으로 내편이었기에  어머니를 타이르며 순조롭게 아이 같은 남편의 성장을 지켜봐 주었다.

배가 점점 빠르게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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