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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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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May 14. 2021

73년생 김지영입니다만 3.

임신 20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양수가 부족하다며 포카리 같은 이온음료를 많이 먹으라고 해서 수시로 포카리를 달고 살았다. 조금만 힘들어도 배가 딴딴해지고 뭉치는 느낌이 들어 남편과는 잠자리를 하지 않고 최대한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이어갔다.  다행히 임신하면서 얼굴에 살도 붙고 혈색도 좋아졌다. 시댁에서는 벌써부터 아이를 위해 평택에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를 물려준다고 야단이었다.


한창 제철인 살구 한 봉지를 사서 들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배가 뭉치기 시작했다. 가 기분이 안 좋아서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막 들어서서 살구 봉지를  주방에 가져다 놓는데 가랑이 사이로 뜨거운 게 주르륵 흘러내렸다. 투명한 색이  양수가 흐르는  같았다. 남편에게 전화하고 천천히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남편과 시부모님이  뒤늦게 차례대로 왔다. 나는 조산기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조산 방지 주사를 맞았으며 입원실로 가 안정을 취하였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당황하고 겁먹어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날 밤,  아이는 뱃속에서 세상밖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며 맴돌고 있었다. 진통이 시작되었다. 처음 느껴보는 통증. 막 아팠다가 통증이 딱 멈추고 숨 돌릴만 하면 또 고통이 막 찾아왔다. 의사는 아이를 꺼내야겠다고 판단하고 나를 분만실로 옮겼다.


"힘주세요. 힘, 아랫배에 힘!!!"


몇 번의 비명 소리와 함께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주 깊은 동굴 속 끝에서 들리는 가느다랗고 희미한 아기 울음소리.


어떻게 입원실로 옮겨졌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니 가족들이 침대 머리맡에 모여있었다. 아기는 다행히 인큐베이터로 옮겨졌다고 했다. 620g의 극초 미숙아다. 그때서야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귓불 흘러내렸다.

옆 침대에 입원한 임산부는 아기를 순산했다고 꽃바구니를 들고 친구들이 몰려와 왁자지껄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아기의 안부를 묻지 않았고 어머니와 남편은 급하게 나온 남편의 직장을 걱정하고 있었다.


며칠 후 퇴원하고 집으로 왔다. 젖이 도는지 젖몸살이 심해서 앉지도 눕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아기는 심장만 겨우 뛸 뿐  눈도 안 보이고, 자가호흡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거의 매일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치료과정을 설명하고 수술동의서를 쓰게 했다. 모든 장기를 다시 손대야 하는 수술이고 수술 후유증으로 뇌성마비나 장기 손상이 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그 수술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기를 살릴 수 없어 나는 겁에 질리면서도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남편은 거의 병원으로  아기를 찾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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