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만에 해보는 넋두리
결혼을 하자던 남자와 헤어진 지 벌써 2개월하고도 며칠이 더 지났다
체감상으로는 이미 몇 년은 지난 것만 같은데 아직 2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음에 한 번 놀라고
아직도 내 마음속에 그가 선명하게 남아있음에 다시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란다
6개월간의 결혼 준비.. 그리고 합가를 통해 나는 꽤나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그는 내가 생각하던 이상형의 남자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나에게 매번 새로움을 선물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그 사람을 생각할 때 미소가 지어진다면 상대방을 좋아하는 거고, 결점이 보였을 때 그 결점조차 끌어안고싶어지면 상대방을 사랑하는거라고
그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내가 원하는 키보다 적어도 5센치는 작지만, 내가 원하는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은 아니지만
주로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듯 하지만 행동 하나하나에 나를 위해줌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본인은 츤데레여서 따뜻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못한다던 사람
그렇지만 행동으로 증명하던 사람
처음으로 그가 나와는 결혼하지 못 할 것 같다고 했던 그 순간의 아픔이 아직도 서늘하다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아직도 심장이 멎는 것 같고 눈 앞이 캄캄해지며 눈물이 맺힐 정도로
그와 이별하고 짐을 챙겨 10년 넘게만에 본가로 들어가던 그 날
나의 본가로 짐을 옮겨주면서 하던 그와의 대화들
자신도 그 짧은 시간만에 결혼을 하고 싶던 여자는 내가 처음이었다고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던 그 날
-나를 너무나도 아껴주시는 그의 어머니가 나를 보낸 그에게 욕을 한 바탕 하시려다가
당신 아들의 모습이 너무 공허해보여 차마 못하고 넘어갈 정도로 그 역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그렇게 그와 이별 후 한 달은 거의 먹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채 정말 시체처럼 누워서만 지냈다
사람이 이 정도로 울 수도 있구나 싶을정도로 울다가 탈진해서 쓰러져 자고 일어나서 멍하게 있다가
나도모르게 두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기를 며칠이나 반복했다
어딘가 외출하고싶지도 않고, 누군가를 만나고싶지도 않은 일상의 반복들
그 좋아하던 게임조차 기력이 없어 한동안 내려놓았다
생각보다 내 일상에는 그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런 흔적들을 볼 때마다 무너져내리고 무너져내리기를 반복했다
결혼준비하겠다고 퇴사까지 한 시점이라 어딜 나갈 일이 없으니 사람이 폐인이 되는건 정말 시간문제더라
그렇게 한 달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남은 짐을 가지러 그와 살던 집에 갈 때만 간신히 외출을 했다
그렇게나마 그의 얼굴을 보고 오면 약간 기운이 돌고 또 무너져내리고
그렇게 서너번을 짐을 챙긴다는 핑계로 그의 얼굴을 보곤 했다
과거 9년의 만남을 가진 K와의 이별을 생각보다 가볍게 넘길 수 있었기에
난 이번 이별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막연히 이 사람과 결혼을 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결혼을 하기로 했던 사람과는
그 충격이나 아픔이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모 드라마에서 나왔던 대사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날이 적당해서-
항상 그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더라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친구들은 하루가 멀다 나를 불러냈고, 가족들은 내 눈치를 봐야만 했다
내일 모레 40이 되는 우리 엄마아빠의 못난 첫째는 파혼의 충격으로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울다가 잠들기를 반복했고, 하루에 한 끼 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
눈에 띄일정도로 야위었고, 거슬거슬해졌고 정말 생기가 없었다고 하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죽을 의지 조차 없어서 숨만 쉬고 있었다는게 딱 맞는 표현일 것 같은
2주정도 지나고서는 어쨌던 이 헛헛한 마음을 달래보고자 닥치는대로 남자를 소개받았다
하루에 2~3탕씩도 밥약속을 잡고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억지로 꾸역꾸역먹고 집에 오는 길에 게워내고
누가 봐도 전 남자보다 괜찮은 남자였고 조건도 훨씬 좋았지만 희안하게도 전 남자가 더 그리울 뿐이었다
누군가를 만날수록 그의 모습이 겹쳐지며 결국에 마음속에서는 그를 찾기에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못할 짓을 하고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나서야
아직까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와 헤어지고 1개월정도 뒤..
동생의 소개로 새로운 직장에 취업을 했고, 되도록이면 바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시어머니가 될 뻔했던 그의 어머니는 취업을 축하한다며 식사를 사주었고
너무나도 우습게 그와는 이별했지만 그의 어머니와는 만나서 식사도 하고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올 겨울에는 홋카이도에 함께 가자고, 내년 여름에는 제주도에서 한 달 살이를 할거니 놀러오라고
그의 어머니와 나는 이미 내년 여름까지의 약속까지 해놓았다
고부관계일뻔한 우리의 조합은 누가 보면 정말 기이한 조합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