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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 bird Sep 18. 2023

짧은 산책

나는 왜 살고 싶지 않은걸까?

막내 동생과 집 근처 천변을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하필이면 전날 둘째동생과 거하게 싸운 뒤 홧김에 약을 복용했고

(정말 오랫만에 홧김에 그렇지만 죽지 않을 정도로)

그로인해 응급실에 실려갔다 온 뒤라 막내 동생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집 근처로 독립한 막내 동생은 주로 주말 저녁에 집에 와서 같이 저녁을 먹곤 하는데

이 날은 저녁을 먹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눌 겸 걸어서 30분거리쯤 있는 동생의 집까지

함께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첫 얘기는 이거였다

"언니는말이야... 아마 이번에 독립을 하면 가족들이랑 절연 할거야. 아마 너를 포함해서

그리고 몇 년 뒤엔 그냥 내 소망처럼 예쁘게 죽었으면 좋겠어"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생도 동감한다고 했다



"죽음"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 부터 나는 죽음에 대한 미학이 있었다 

자기애의 끝인건지 집착인건지

나의 죽음은 남들이 보기에 아름다워야만한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죽음의 방법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다


뛰어내리면 어딘가 깨지거나 뭉그러질 것이고

목을 매자니 혀가 쭉 빠지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 돌출되기도 한다

익사 또한 상상도 못할 만큼 퉁퉁 불어 차마 사람이 볼 것이 못된다고 한다

이러한 방법들은 내가 생각하는 죽음의 미학에 어긋나기에 감히 시도할 상상 조차 못해봤다


급식이 시절의 나는 죽음의 수많은 방법 중 하나로 백합을 이용한 자살을 고민해보기도 했다

'백합에는 독소가 있어 그 독소를 계속 마시게 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 '

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듣고 백합에 둘러쌓여 죽는 상상도 해보았고 실제로 알아보기도 했다

실제로 식물도 호흡을 하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 안에서 식물과 함께 있으면

산소고갈로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단지 필요한 식물이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하게 많을 뿐 

좁고 밀폐된 방에 백합에 가득 둘러쌓여 죽을 수 있다면 나름대로 괜찮을 지도?


급식이때는 이런 상상을 했었다 라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철딱서니였는지



"가족"


가족이란 나에게 정말 아픈 단어이다 

차마 내가 직접 선택하지 못했고, 떼어내고 싶으나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그래서 나는 도피성으로 결혼을 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최소한 결혼의 상대는 서로 선택한 사이이기에 남 탓이 아닌 내 탓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스스로 생각해도 결혼에 대한 동기 자체가 이미 불순하다


가족이 불편한 것에 대해서는 막내동생도 매우 동의하는 바이다

막내동생은 자신이 독립한 뒤 마음의 안정을 많이 얻었다고 했다

나 역시도 파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한 남자의 아내로 잘 살고 있었겠지

어쩌면 그 남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혼자 살던 그 집을 잘 유지하며 

적당히 연애를 하며 잘 살고 있었겠지 라는 생각에 또 괜히 씁쓸해졌다


지금도 매우 격렬하게 다시 독립을 하고 싶지만 부모님은 집에 있었으면 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한 가지 이유는 딸의 경제력을 걱정하셔서 

혼자 살 면 아무래도 돈이 나가다보니 그 돈을 아깝다 생각하신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질때문에

혼자 있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무서움을 잘 타는 성격이라 혼자 있는 걸 많이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보다는 

한 달에 월세 혹은 이자로 나가는 돈이. 그리고 내가 혼자여서 받는 스트레스가 훨씬 가볍다고 느껴진다


실제로 본가로 들어온 뒤 성격이 많이 날서게 된 나를 보면서도 

앞으로 만날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다시 독립은 필요하겠구나 라고 느낀다 



"심리검사"


이 모든 얘기를 듣던 동생은 심리상담을 권유했다

본인의 기질을 아는 것 만으로도 꽤나 도움이 된다고

정신과의 검사와는 조금 다른 성질의 어떠한 것이라고


동생은 상담을 받고 자신의 상태를 알게되는 것 만으로도

굉장히 큰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된다고 했다

상담도 강요하지 않아 부담감도 적고, 본인이 무엇을 해야할 지

조금 더 확실하게 알게 된 느낌이라고 했다


일단 동생이 추천해주는 병원의 오픈카톡을 등록은 했다

상담 예약을 잡으면 되는데 뭔가 에너지가 고갈되어서는 쉽사리 손이 떨어지질 않는다

아니면 나 자신의 민낯을 보게 되는게 부담이 되는 건지



그렇게 30분정도 걷다보니 동생의 집 근처에 도착했다

서로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은 채 


이제 심리검사 예약을 살랑살랑 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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