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by yuri

수업 시간에 게임하고 있는 학생, 지각하는 학생, 교복 안 입는 학생에게 반성문을 써오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반성문을 써온 학생에게 "선생님이 왜 반성문을 쓰라고 했는지 생각해 봤니"라고 물으니 아이는 "제가 선생님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요"라고 답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라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아이에게 "반성문을 쓴 이유는 선생님의 기분을 나쁘게 해서가 아니라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야. 만일 서로가 신호를 지키지 않고 운전을 하면 어떻게 되겠니... 사고가 나겠지... 그래서 우리는 서로 안전해지기 위해서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지키는 거야."라고 말하며 돌려보냈습니다. 솔직히 제가 설명을 잘 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희 반 아이들이 제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게 짠하더라고요.


저희 어머니는 한번 화를 내고 나시면 끙끙 앓아누우셨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잘못했다는 생각이 안 들어도 엄마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집에서는 엄마 눈치 보느라 바빴고, 학교에서는 친구들, 선생님들 눈치 보느라 바빴고, 직장에서는 동료들과 상사들 눈치를 보느라 바빴습니다. 그래서 더 나를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회색인간. 그게 저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주장이 없는. 뭘 해도 다 좋은. 함부로 대해도 찍소리 못하는 그런 사람...

혹자는 저출산 시대니까 젊은이들이 부족한 만큼 한국이 지금과 같은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BTS급의 슈퍼스타로 만들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닌 리더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남의 눈치를 잘 살피는 방법을 가르칠게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와 목적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클수록 느는 건 남의 눈치를 보는 능력 같습니다. 수업이 끝나갈 때쯤 누군가 선생님께 질문을 하려고 하면 눈치를 챙기라는 무언의 압박을 줍니다. 논술형 문제의 답을 적을 때도 내 생각이 아니라 선생님의 생각을 적습니다. 직장생활에서도 상사의 의중을 눈치껏 잘 헤아려 처신합니다.


눈치를 잘 보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남의 눈치를 너무 많이 의식하면 딱 중간만 가는 것 같습니다. 너무 못나지도 잘나지도 않은 그런 둥글둥글한 상태...

눈치를 살피면서 사는 삶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한 것 같습니다. 어제는 "Ok"였던 게 오늘은 "No"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스트레스 받는거구요...

사회생활을 하려면 남의 눈치를 전혀 안 보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너무 하고 싶으면 적당히 눈치껏 안 걸리게 알아서 잘하라고 말했습니다. 대신 그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받아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더니 "선생님이 이런 말 해도 돼요?"라고 오히려 저를 걱정하더군요. :)

눈치는 이럴 때 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남을 의식하는 삶을 살지는 맙시다. 이제는 남 눈치가 아니라 내 눈치를 볼 때입니다. 당당하게 허리피고, 어깨피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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