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시 감독

by yuri

"요즘 세상에 초등학교도 안 나온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하지만 검정고시 감독을 나가보면 다양한 삶의 이유로 그 당연한 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몇 주 전에 처음으로 검정고시 감독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일해서 인지 중학교 졸업 학력인증 시험장에 감독교사로 배치 되었습니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니까 나이가 많은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라고 생각하고 교실에 들어갔는데 학교에서 보던 앳된 얼굴의 어린 학생부터 외국인(?), 부모님 뻘의 만학도분까지 다양한 나이 때의 수험생들이 한 공간에 혼재되어 있습니다.


시험 감독을 나가면 긴 시간 멍하니 멍 때리며 감독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이 사람은 어떤 사연이 있어서 학교를 다녀야 할 나이에 학교를 가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보고 있을까?'라는 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직업병이라고 인적사항에 "정원 외 관리(중학교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자퇴를 할 경우 정원 외 관리자로 분류되어 중학교 졸업 학력을 인증받기 전까지 자퇴(?)한 학교에 학적이 그대로 남아있게 됩니다)"라는 문구를 보면 저도 모르게 학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학교 생활이 많이 힘들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을 하고 있는데 부모님 나이쯤 되어 보이는 분께서 "선생님 마킹을 잘했는지 한 번만 봐주세요"라고 손들고 요청을 하셔서 인적사항 부분 중에 잘못된 부분이 있어 알려드린 적이 있습니다. 연세가 있으셔서 OMR카드 속에 있는 조그마한 숫자가 잘 안보이셔서 OMR 카드 가까이에 얼굴을 가져다 대시면서 정성스럽게 마킹을 하시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남들 공부할 때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 대학이 큰 의미가 없는 연세인데도 불구하고 중학교 졸업 학력 인증을 받기 위해 도전하시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저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외국분(한국 이름을 쓰시는 것으로 보아 귀화를 하지 않았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답은 마킹을 하셨는데 인적사항이 마킹되어 있지 않아 종치기 전에 얼른 하시라고 안내를 하니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도와달라고 하시더군요.

투자의 귀재인 워런버핏은 자신이 투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헬조선이다라고 해도 저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향해가는 과정 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중학교 의무교육의 혜택을 입어 중학교를 공짜로 다녔습니다. '같은 나이대지만 어디서 태어났는지에 따라서 교육적 혜택을 다르게 받고 자라는구나'라는 생각이 삼 들었습니다.


대학교 때 교수님 중 한 분이 자신은 삶이 너무 힘들고 지치면 응급실에서 가서 자원봉사를 하시고 오신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마음을 검정고시 감독을 하면서 어렴풋하게 느꼈습니다.

내가 지금껏 당연하게 누려온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간절히 바라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치르고, 감독해 온 대부분의 시험은 상대평가라 남을 밟아야 내가 올라가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볼 때도 감독을 할 때도 항상 긴장하면서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수능 감독 때만 생각해도 덥다, 춥다, 벌레 잡아달라, 옆사람이 훌쩍여서 신경 쓰여 시험을 못보겠다. 못하게 해 달라 등의 민원을 받으면서 감독을 했습니다. 하지만 검정고시는 절대평가라 그런지 그런 긴장감은 없었습니다. 대신 원해서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는 사람이라 그런지 수험생들의 표정이 밝은 편이군요.

쫓기면서 하는 공부는 뇌천자를 쓰며 공부하게 뇌는데 좋아서 하는 공부는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며 공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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