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꽃길만 걷자"인 것 같다. 얼핏 생각하면 이 말이 되게 좋은 말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무서운 말이다.
꽃은 흙 속에서만 핀다. 절대 아스팔트 같은 포장도로에서 필 수가 없다. 즉 "꽃길만 걷자"는 말은 "앞으로 너의 인생은 흙밭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흙이니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아스팔트였으면 뿌리를 내리기는커녕 햇빛에 타 죽었을 것이다.
뭔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흙밭을 걷는 것처럼 옷이 더러워지고 넘어지는 일 투성이다. 남들은 예쁜 꽃을 피웠는데 왜 나는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인지 신세한탄만 하고 있다. 하지만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흙속에 씨앗을 심고 씨앗에서 뿌리가 자라 그 뿌리가 땅 속에 자리를 잡아야만 싹이 틀 수 있다. 그러니 아직 나는 땅 속에 뿌리를 내리며 내 자리를 만들고 있는 중인 것인다. 이미 활짝 핀 꽃은 시들일만 남았다. :)
주위에서 나를 비난하는 이유는 내가 너무도 예쁜 꽃을 피울 것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그럴 가능성이 없어서 나랑 같이 여기 있자고 플러팅 중인 것이다. 이미 꽃을 피운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것도 어쩌면 내 뒷모습에 숨겨진 장점을 보고 부러워서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비난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모의고사지만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커서 시험을 보다가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때 받은 언어영역 시험 점수는 내 인생 최악의 점수였다. 반 학생들이 어찌나 나를 놀리던지 한 번은 같은 반 아이가 자신의 남자친구랑 통화하는 내용을 듣게 되었는데 "내가 우리 반 1등보다 시험을 더 잘 봤다니까. 나보다 시험을 못 봤으면 말 다한거지"라고 말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나를 이긴 게 참 좋았나 보다.높은 점수도 아닌데 남자친구한테 자랑을 하는 걸 보면 ^^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진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면 내가 뭘 하든 "아이고 잘한다"라고 하지 않을까라고.
어제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선생님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실수담이든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어려움이든 그냥 다 이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20대 만의 풋풋함과 설렘 등이 느껴졌다. 거절을 못하고 화를 못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재미있었다.(물론 지금의 내가 거절을 잘하고 화를 잘내는건 아니다. 나이를 먹었어도 똑같다) ^^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 책을 읽는데 죽은 개를 걷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과 함께 영국 왕 에드워드 8세의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그는 데번셔의 다트머스 대학교(미국으로 치면 해군사관학교)에 다녔는데 당시 왕세자의 나이가 열 네 살 정도였다고 한다. 하루는 해군 장교 한 사람이 왕세자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계속 입을 열지 않다가 생도들이 그에게 발길질을 했다고 말했다. 대학 학장은 생도들을 불러 왜 왕세자를 괴롭혔냐고 물으니 나중에 자신들이 영국 해군 지휘관이 되었을 때 예전에 왕을 걷어찬 적이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즉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거다.(정신승리)
인생사 꽃길을 걷는다는 건 정해진 길이 없으니 실수와 실패가 난무하고 꽃을 향해 달려드는 벌과 나비들 처럼 주위에서 앵앵 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피곤하겠지만 그럴수록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포장도로는 장애물이 아무것도 없어서 편해 보이지만 아스팔트는 열을 흡수하는 검은색이라 매우 뜨겁다. 잘못하면 타죽는다.
쉬워 보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이 많아 보일 뿐 비율로 보면 흙길을 건너나 아스팔트 길을 건너나 비슷하게 고생하고 비슷하게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꽃길은 느리지만 중간중간 감상할 게 많아서 덜 힘들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