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시끄러운 반 아이들을 피해 조용히 공부할 곳을 찾다가 폐쇄된 연습실에서 저녁마다 자습을 했습니다. 그 연습실이 폐쇄된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예전에 저희 학교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했을 때 선배들의 괴롭힘을 받던 학생 한 명이 연습실에서 자살을 했고 그 뒤로 연습실 전체가 폐쇄되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다가 귀신이 반주를 해주면 서울 상위권 대학에 합격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날도 늦게까지 폐쇄된 연습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저녁 10시가 다가와 종례를 받기 위해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연습실을 나왔는데 건물 전체에 불이 꺼져있어서 그런지 계단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종종 폐쇄된 연습실 근처 교무실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들께서 퇴근하시면서 건물 전체 불을 끄고 가시는 경우가 있어서 그날도 그런가 보다 하고 계단 난간을 잡고 조심히 어둠 속을 걸어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겨우 1층에 도착해서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는데 문이 잠겨있더군요. 당시는 학교에 등교를 하면 핸드폰을 담임 선생님께 제출해야 됐기 때문에 전화로 구조 요청을 할 수 없어서 난감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 불빛하나 들지 않는 건물에 혼자 갇혀버린 것입니다. 아무도 제가 여기에 갇혀있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죠.
몇 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불빛하나 들지 않은 건물 1층에서 문을 붙잡고 서 있는데 행인 한 명이 지나가 열심히 문을 두드렸습니다. '여기 사람 있어요. 구해주세요'라고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런데 '설마 이곳에 사람이 있겠어'라고 생각했는지 더 빠르게 지나쳐 가지더군요. 그렇게 한참 동안 갇혀있다가 수의 아저씨께서 발견하시고 겨우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전 겁이 매우 많은 사람입니다. 한 번은 남자친구와 <도어락>이라는 영화를 보고 왔는데 그 뒤로는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꼭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면서 집에 이상한 사람이 숨어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지 열심히 집안 이곳저곳을 뒤졌습니다. 공포영화도 당연히 못 봅니다. 정확히 말하면 보는 건 할 수 있는데 보고 나면 상상의 나래가 마구 펼쳐 저 잠을 못 잡니다.
고등학교 때 혼자 건물에 갇혔을 때는 무섭기는 했지만 불빛하나 없는 곳에서 화장실도 잘 찾아가고 '귀신을 만나게 되면 잘 구슬려서 친구로 만든 다음에 수능 문제 커닝을 시켜야지'라는 이상한 생각도 했습니다.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자주 가위에 눌리던 터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근거 없는 이야기지만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는 저승 문이 열려있기 때문에 귀신이 이승에 올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뒤로부터는 새벽에는 절대 혼자서 깨어있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삶이 너무 힘들 때는 새벽에 혼자 깨어있어도 무섭지 않은데 살만하다고 생각될 때는 새벽에 혼자 깨어있는 게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저녁에 무서움을 느끼면 '내가 지금 행복하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가진 게 많아져서 잃고 싶지 않은 거니까요.
누군가 "다시 태어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질문에 저는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평범한 하루를 좋아하는 저는 무서움을 느낄 때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지금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