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하네요. 공부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마음입니다. 빨리 달리려다가 자칫 넘어지거나 주저앉아 버릴 수 있어요."
오늘도 어김없이 학부모 중에 나는 이 ‘잔소리 버튼’을 눌렀다. 담담한 표정으로 학부모에게 건네는 이 말은, 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자 경고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정말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수업 중,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찌릿하다. 툭하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호소하는 아이들, 탈모와 지루성 피부염에 시달리는 친구들이 어디 한둘인가. 단순히 ‘수업이 듣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수준이 절대 아니다. 상위권 학생들마저 모의고사를 풀다가 “선생님,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라고 말하고 한참 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그 작고 여린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얼마나 클까.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매일 마음속으로 '철벽'을 친다. '내 아이는 절대 저렇게 키우지 않을 거야. 내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면서까지 시키지 않을 거야. 공부는 재능이고, 엄마의 욕심은 내려놓자.'
하지만 현실은 마치 잘 차려입은 코미디언처럼 나를 비웃는다. 나의 굳건한 다짐이 얼마나 솜사탕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같은 어린이집 엄마들과의 가벼운 수다 속에서 여지없이 깨달았다.
"00 엄마는 미술 안 시켜요? 요즘은 EQ가 중요해서 문센(문화센터)에서 다들 미술, 음악 하는데, 00 엄마는 안 하는구나."
순간,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마치 잘 나가던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먹통이 된 기분이었다. '나만 안 하는 건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태풍처럼 불안감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이 불안감은 곧 재난 문자에 버금가는 행동 지침으로 바뀌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홀린 듯이 노트북을 켰다. 검색 창에는 '오감놀이', '쿠킹 클래스', '오르프 음악' 같은 단어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처음에는 '그래, 한두 개 정도 체험 삼아 등록해보자'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그 다짐은 마치 밀가루 반죽처럼 쉽게 풀어졌다. 한 프로그램의 '신청' 버튼을 누르는 순간, 주변의 다른 프로그램들이 "나도! 나도!" 하며 눈앞에서 신나는 군무를 추기 시작했다. 홀린 듯이 마우스를 따라가며 결제를 마치고 나니, 온 몸의 진이 빠졌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유아기에 2년 걸려 배울 것을 조금 더 커서 시키면 1년도 채 안 걸려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엄마도 커피 한 잔 마시며 쉬고, 아이는 놀면서 사회성을 키우는 일석이조'를 생각하며 문화센터에 등록했는데, 이상하게 갈수록 피로만 쌓인다.
아이에게는 '힐링'과 '웃음'만 주고 싶다.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안하면 뒤처지지 않을까?'라는 비교심이 내 마음속을 가차 없이 파고든다. 그러다 어느순간 한국어도 제대로 못 읽는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어학원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느새 나는 '아이의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라는 고상한 이상과,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불안한 현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이 줄 위에서 불안하게 다음 수강신청 버튼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