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하는 순간부터 엄마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산부인과, 산후조리원, 자연분만 또는 제왕절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결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것 아닌 일처럼 느껴지지만, 그때의 저는 세상에서 가장 조심스럽고 서툰 초보 엄마였습니다.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길이라면, 어떤 선택이든 주저 없이 따르려 애썼습니다.
육아를 하며 처음 마주한 큰 벽은 ‘모유수유 vs. 분유수유’였습니다.
조리원에 입소하면 엄마들은 초유를 젖병에 담아 이름표를 붙여 내놓습니다. 그 젖병들이 줄지어 놓인 광경은 어쩐지 조용한 경쟁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른 엄마들의 젖병 속에 초유가 가득 찬 것을 볼 때마다, 제 젖병은 유난히 작아 보였고, 그만큼 제 마음도 위축되었습니다.
가슴 마사지를 받고, 모유 촉진차를 마시며 애를 썼지만 모유의 양은 좀처럼 늘지 않았습니다. 모유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마치 ‘엄마로서의 능력 부족’처럼 느껴지며 저를 괴롭혔습니다.
결국 단유를 결심하고 분유수유를 하겠다고 했을 때, 친정엄마는 단호히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그래도 모유가 최고야. 그게 너한테도 좋고, 애한테도 좋아.” 엄마의 그 말은 제에게 무거운 압박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시 모유수유를 시도하려던 순간, 조리원 신생아실 선생님의 한마디는 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OO이 어머님, 아이 굶겨 죽이실 건가요?”
그 말 한마디는 제게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잔인한 경계선을 그어버렸습니다. 친정엄마는 “우리 집 여자는 다 젖이 적어도 잘 키웠다”며 “수시로 물리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육아책과 블로그는 달랐습니다. “4시간 간격으로 몇 ml를 먹여야 한다”, “충분히 먹지 못하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저는 점점 더 위축되었고, 어떤 게 옳은지조차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습니다.
결국 저는 어느 한쪽도 완전히 선택하지 못한 채, 혼합수유를 하기로 했습니다. 모유를 먹인 뒤 분유를 먹이며, 어떤 것을 더 선호할지는 아이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위는 유난히 예민했고, 분유를 먹일 때마다 토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진 저는 시중에 판매하는 젖병을 거의 다 사보았고, 일반 분유부터 특수 분유까지 가리지 않고 바꿔가며 수없이 시도했습니다. "이번엔 괜찮겠지." 수십 번 마음을 다잡았지만, 결과는 늘 비슷했습니다.
자동 분유 제조기가 더 정확하고 위생적일 것이라는 기대에 비싼 돈을 들여 구입했지만, 아이는 여전히 분유를 토했고, 저는 점점 확신을 잃어갔습니다. 결국 다시 손으로 돌아왔습니다. 물을 끓이고, 식히고, 정성껏 분유를 타서 젖병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분유를 완전히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이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완전 모유수유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계와 정보, 타인의 조언에 휘둘리던 시간들을 지나, 결국은 나와 아이, 둘만의 호흡으로 돌아온 셈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은 분유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오직 모유로 아이를 길러왔습니다. 우리의 몸은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저는 그 단순하고도 위대한 진리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넘쳐나는 정보와 수많은 조언들 사이에서 제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이건 안 돼.” “그건 위험해.”라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고, 어느 순간에는 제 자신조차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이가 어릴 때는 사소한 선택들이 큰 차이를 만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기농 로션을 쓰든 마트에서 파는 일반 로션을 쓰든 다 비슷했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맘카페나 육아 커뮤니티에서는 성분을 비교하며 특정 제품을 써야 한다고 했고, 저는 ‘이것을 써야 좋은 엄마’라는 생각에 큰돈을 들여 덜컥 구매했습니다.
조리원 강의에서 다른 엄마들이 브랜드별 성분 차이를 줄줄이 외울 때, 아무 말도 못 하고 앉아있는 제 모습은 저를 ‘게으른 엄마’라고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강사가 좋다고 하는 제품을 덜컥 구매하고서야 마음을 놓았는데, 돌이켜보면 지나친 상술에 놀아난 것 같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온 덕분일까요. 지금 돌아본다면, 그때의 저를 조금 더 믿어주고 싶습니다.
이제야 육아 선배들이 말하던 그 문장이 진심으로 이해됩니다.
둘째는 발로도 키울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