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시대, 학원과 교육의 그늘

by yuri

요즘 학교 현장을 보면 예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수능의 비중이 줄고 내신의 비중이 커지면서,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도 ‘전략적 자퇴’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전에는 자퇴가 학업 포기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성적 초기화를 위한 하나의 선택지로 여겨지는 것이다.


한때는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의 이야기로만 들리던 자퇴가, 이제는 ‘공부를 더 잘하기 위한 전략’으로 변하고 있다.
하위권 학생들은 강화된 출결 기준 때문에 학교생활 자체가 벅차 자퇴를 고민한다. 반면 상위권 학생들은 쌓여가는 내신의 압박 속에서 ‘리셋’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다. 자퇴 후 다시 복학을 하면 내신을 초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정고시 제도를 활용하는 길도 있다. 검정고시로는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이 제한되지만, 내신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어려운 학생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된다. 검정고시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 이를 내신으로 환산하는 것이, 실제로는 기존 내신을 유지하는 것보다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틈을 학원 업계가 놓칠 리 없다. 그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이 변화의 흐름을 읽고, 누구보다 신속하게 사업의 방향을 틀었다. 요즘 등굣길을 걸어보면 “자퇴생 관리 전문”이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자퇴를 새로운 시장으로 본 것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보험과 학원은 인간의 불안심리를 가장 정교하게 포착한 산업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보험은 '혹시 모를 불행'을, 학원은 '놓칠지 모를 기회'를 팔고 있다. ‘혹시 우리 아이가 뒤처지면 어쩌지’라는 부모의 마음, ‘이 기회를 놓치면 나만 뒤늦을까’ 하는 불안감이 학원의 교재와 커리큘럼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초등학교 의대반, 심지어 유치원 의대 입시반까지 등장한 현실은 그 불안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상업화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남들보다 빨리, 남들보다 앞서 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사교육의 트랙 위에 올려놓는다.


학교 안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영재교육원에 다니며 ‘특별한 아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학생들이, 중·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점점 평범해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단순히 성적이 예전만 못한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많은 경우 학습의 어려움을 넘어 정서적인 불안과 혼란이 함께 찾아온다.
‘나는 예전처럼 잘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부모님이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쌓이면서 자신감이 무너지고, 그 불안이 다시 성적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러나 불안을 느끼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부모 역시 두렵다.
아이의 불안이 곧 자신의 불안으로 번져, 결국 그 불안을 통제로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집 안에 CCTV를 설치하고, 핸드폰 사용을 제한하며,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려 든다. 하지만 그 행동의 바탕에는 ‘혹시 실패하면 어쩌지’, ‘지금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하는 두려움이 자리한다.
부모의 불안은 아이의 자유를 좁히고, 아이는 그 안에서 점점 자아를 잃어간다. 그렇게 두 사람의 불안이 서로를 비추며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불안을 아이에게 투영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매 순간 내 선택이 아이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불안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학원이나 사교육의 힘에 기대고 싶어진다. ‘전문가가 알아서 해주면 덜 불안할 텐데’하면서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마음에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


아이는 부모의 불안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엄마가 든든하게 서 있어야 그 아래에서 자라는 작은 나무가 곧게 자랄 수 있다.
엄마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면, 그 그늘 아래의 어린 나무는 금세 휘어진다.
세상이 아무리 불안정해도, 엄마의 마음은 흔들림 없는 뿌리가 되어야 한다.

학원을 열심히 다닌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불안하니까, 책임지기 무서우니까 우리는 학원에 의존한다. 어떻게 보면 학원에 매달리는 건 ‘불안을 외주화 하는 행위’인 셈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안이 클수록 보험을 많이 드는 것처럼, 불안이 클수록 학원에 더 깊이 의존하게 되는 현상.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교육의 초상이 아닌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교육의 본질은 불안을 다루는 힘을 기르는 일이 아닐까.
아이뿐 아니라 부모인 우리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평정심이다.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그 불안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연습 — 그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교육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p.s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늘 흔들린다.
머리로는 놀이와 학습이 균형을 이룬 유치원이 아이의 행복에 더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학습 특화 유치원’에 더 마음이 간다.

이성은 고요하게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감정은 불안의 파도 위를 떠돈다.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흔들리되 다시 중심을 찾아가는 부모로 남는 것 — 그것이 우리가 아이와 함께 배워가는 진짜 성장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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