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에는 과학·수학 영재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인데 벌써 5차 방정식을 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부러움 반, 좌절감 반,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우리 아이는 너무 놀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불쑥,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나는 음악을 전공했다. 좋아서 시작했지만,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로 버티기엔 너무 치열한 길이었다. 밤새 연습해도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 때의 허무함, 한순간에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언제나 나를 누르던 완벽의 압박감. 그래서 내 아이만큼은 예체능의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랐다. 조금 평범하더라도, 안정된 길을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는 춤추기를 좋아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노래가 나오면 저절로 몸을 흔들고, 색연필을 들면 세상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런 아이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시에, 묘한 불안이 스며든다. ‘설마 예체능 쪽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OO이는 춤선이 달라요.” “보통 이 나이 또래는 칸 안에 색칠을 잘 못하는데 OO이는 아주 꼼꼼하게 잘해요.”라고 말할 때면, 나는 덜컥 겁이 난다. 칭찬인데도 마음 한쪽이 무거워진다. 머리로는 ‘아이의 재능을 존중해야 한다’, ‘내 꿈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말자’라고 수십 번 되뇌지만, 마음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영재 엄마가 부럽다.
교육학을 공부하며 ‘발달 과업’이라는 말을 배웠다. 아이는 자신의 속도로 성장하며, 그 과정을 존중받을 때 온전히 자라난다고 했다. 머리로는 다 이해했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이론처럼 냉철하지 않다. 내 아이가 뒤처지는 것 같으면 불안하고, 누군가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괜히 비교하게 된다. 나도 내 아이가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선생님, 어릴 때부터 좋다는 학원, 과외 안 해본 게 없는데 우리 애는 왜 이럴까요?” 그럴 때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한다. “저는 공부도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게 있으면 그쪽으로 진로를 고민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리고 속으로 다짐한다. ‘공부, 공부 하며 몰아붙이지 말자. 아이의 속도를 믿자.’
하지만 다짐은 늘 짧다. 이제 막 유치원에 입학하려는 아이에게 영어 학원과 수학 학원을 세팅하려는 나를 보며 문득 현타가 온다. 그러다 다시 영재 아이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마음의 균형을 맞추려 애쓴다. ‘그래, 너무 공부만 하면 사회성이 떨어져서 친구 사귀기 어렵잖아.’ ‘나는 영재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보다는 사회성이 좋은 보통의 아이가 더 좋아.’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한다.
교사로서의 나는 확실히 사회성이 좋은 아이를 더 좋아한다. 친구와 잘 어울리고, 갈등을 조정할 줄 알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 그런 아이들이 있는 반은 언제나 공기가 부드럽다. 하지만 엄마로서의 나는 조금 다르다. ‘그래도 내 아이가 조금 더 특별했으면 좋겠는데…’ 그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본다. 나는 내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걸까. 똑똑한 아이? 사회성이 좋은 아이? 아니면 단지 행복한 아이일까. 답을 찾지 못한 채, 나는 또다시 아이를 바라본다. 춤을 추며 웃고 있는 그 얼굴을 보며 마음 한켠이 또 팔랑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