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학교에서 대입 강연이 열렸다. 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마이크를 잡으신 교장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로 학부모님들께 말씀하셨다.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시키셔야 합니다."
그 순간, 맨 뒷줄에 앉아있던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아니요, 잘하는 걸 시키셔야 합니다.'
돈은 '좋아함'이 아니라 '잘함'에 지불된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진로와 취업은 결국 생존, 즉 돈과 직결된다. 자본주의 시장은 누군가의 열정(Passion)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오직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의 숙련도(Proficiency)에 지불할 뿐이다.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잘할 때 연봉의 숫자가 바뀌고, 그 숫자가 곧 삶의 안전망이 된다.
"좋아하는 게 없어서 자유전공에 가고 싶어요"
우리 반 학생 한 명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딱히 '이거다'하고 좋아하는 게 없어서 자유전공학부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게 솔직한 거라고 생각한다. 무한 경쟁 속에서 남의 등번호만 보고 달려온 아이들에게 '네가 좋아하는 게 뭐니?'라고 묻는 건 가혹한 일이다. 이 질문은 어느덧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숙제이자 스트레스가 되어버렸다.
사실 우리가 '좋아한다'라고 믿는 것들의 뿌리를 캐보면, 우연히 시도했다가 "잘한다"라고 칭찬을 받았고, 그 성취감이 강화되어 더 열심히 하게 된 '잘함의 부산물'인 경우가 많다,
즉, 잘하면 좋아질 확률이 높지만,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잘하게 되는 건 아니다.
전공자가 되는 순간, '즐거움'은 '공포'로 변한다
어린 시절, 무대 위 악기를 다루는 내 모습에 쏟아지는 찬사가 좋아 '나는 음악을 잘하니까 전공해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취미의 영역을 벗어나 프로의 세계로 들어선 순간, 무대는 즐거움이 아닌 공포의 공간이 되었다. 관객은 더 이상 나의 즐거움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전공자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나를 분석하고 비교한다.
좋아하는 만화를 직업으로 삼지 않는 이유도 같다. 방학 내내 방구석에 틀어박혀 만화를 볼 때 나는 가장 행복하지만, 그것이 '마감'과 '평가'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의 유일한 도피처는 무너질 것이다. 좋아하는 것은 때로 취미라는 보호막 아래 있을 때 가장 빛난다.
상방이 뚫린 사회, '전방위 1등급'보다 '뾰족한 한 칼'
학생들에게 종종 말하곤 한다. 고등학교까지는 ‘천장’이 막힌 사회라고. 1등급 위에는 더 이상의 등급이 없기에, 모든 과목을 고르게 잘하는 전략이 가장 효율적이다. '1155'로 들쭉날쭉하게 평균 3등급을 맞추는 것보다, '3333'으로 고르게 3등급을 만드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상위권에서 극상위권으로 올라가는 과정은 지독한 다이어트의 과정과 같다. 고도비만에서 정상 체중이 되는 것보다, 이미 마른 사람이 ‘뼈만 남은 몸’이 되는 것이 훨씬 고통스럽다. 정체기에 머문 몸무게처럼, 성적표의 숫자는 어느 지점에서 지독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 상방은 무한하게 열린다. 내 위로 ‘나는 놈’들이 즐비한 정글이 펼쳐진다. 이곳은 더 이상 평균의 안락함이 통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적당히 둥근 원형의 능력이 아니다. 거친 정글을 헤쳐 나갈 압도적으로 ‘뾰족한 한 칼’이다.
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행동이다
좋아하는 것을 할지, 잘하는 것을 할지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중요한 건 무엇이든 하나를 붙잡고 끝까지 가보는 '행동'이다. 싫어하는 과목도 참고하다 보면 거부감이 줄어들듯, 숙련의 과정은 반드시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제자들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자책하며 멈춰 서지 마라. 일단 네 손에 잡힌 것을 남들보다 잘하게 만들어라. 경제적 독립과 타인의 인정이 따라올 때, 비로소 너는 네 삶을 '좋아할' 여유를 갖게 될 테니까.
p.s. 고민은 그만하고 한 글자라도 더 보자. 움직여라 MOVE M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