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앞의 부모, 손을 놓아야 하는 시간

by yuri

학교에 다니기 싫다며 자퇴를 선언한 아이를 "딱 일주일만 더 생각해보자"며 어르고 달래서 무사히 진급시켰던 기억이 납니다. 그 짧은 일주일 동안 제 안에서는 치열한 전쟁이 일었습니다. '내가 아이의 소중한 시간을 억지로 뺏고 있는 건 아닐까? 의미 없는 교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보다, 차라리 자퇴하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해주는 게 부모로서 더 큰 배려가 아닐까?' 하는 그런 내면의 갈등 말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고집을 부렸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고등학교라는 시절을 온전히 통과하는 경험은, 훗날 아이가 마주할 거친 세상에서 무엇보다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줄 거라는 저만의 믿음 때문이었죠. 그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아이가 윗 학년으로 올라가 친구들과 웃으며 학교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그때의 제 고집이 틀리지 않았음을 아이의 미소가 증명해 주는 듯해서요.


요즘 우리 아이는 무엇이든 스스로 해내려는 이른바 ‘내가내가’ 병에 푹 빠져 있습니다. 부쩍 자란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사실 손은 더 많이 갑니다. 한번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데, 제가 무의식중에 "건널 때는 꼭 엄마 손을 잡아야 해"라고 말했더니 아이가 대뜸 저를 보며 묻더군요.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데, 엄마는 왜 자꾸 내 손을 잡으라고 해?"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아이가 길 위에서 사고라도 당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손을 내밀었지만, 아이에게 그 손길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구속이자 불신이었던 셈이죠.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실상은 제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아이를 제 통제 아래 꽁꽁 묶어두려 했던 것은 아닌지 아프게 반성했습니다. 아이가 본래 조심성이 많고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부모를 확인하는 신중한 성격인 걸 잘 알면서도, 그 아이를 믿고 온전히 혼자 서게 두는 것은 부모에게도 참 어려운 숙제입니다.


이런 고민은 학교 현장에서도 거울처럼 되풀이됩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참 민주적입니다. 아이의 의견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 주시죠. 제가 처음 교직에 섰을 때만 해도 "선생님, 저희 애 엄하게 가르쳐주세요"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세요"라는 요청을 더 많이 듣습니다. 자퇴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은 "아이가 원해서요"라며 한 걸음 물러나 계시고, 오히려 담임인 제가 학생과 학부모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말리는 기묘한 형국이 벌어지곤 합니다.

물론 아이의 목표가 뚜렷하다면 저도 기꺼이 응원할 겁니다. 하지만 대개는 "일단 그만두고 나서 생각할게요"라는 식입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고를 하는 저로서는 참 납득하기 힘든 풍경이죠.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워낙 촘촘한 학원 스케줄에 길들여진 탓인지, 스스로 무언가를 주도하는 힘이 많이 약해졌다는 걸 느낍니다. "탐구하고 싶은 주제를 정해서 보고서를 써보렴" 하고 제안하면, 아이들의 눈동자엔 물음표만 가득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라는 대답이 메아리처럼 돌아오기 일쑤죠.

결국 저는 AI에게 명령어를 입력하듯 아주 세세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합니다.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본 유튜브 영상이 뭐야?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영상에서 주제를 찾아보자"라고 다독이며, 그 주제를 실험이나 캠페인으로 연결하는 법을 하나하나 일러줍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묻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하는 게 정말 맞아요?"라고요. 정답이 없는 길 위에서조차 '정답'인지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짠해집니다.


공부 말고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하게 해준다는 부모님들의 말 속에는, 때로 조급함이라는 독이 섞여 있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것조차 '성취'와 '결과'를 위해 학원 스케줄로 만들어버리죠.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정서가 교육에도 그대로 스며든 탓일까요. 어떤 아이는 대기만성형이라 꽃을 피우기까지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는 그 실패와 시도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합니다. 마치 '꼬마 대장'처럼 부모가 미리 길을 다 닦아놓고 "나만 따라와"라고 외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선배 동료 교사들이 자녀의 학원 스케줄을 완벽하게 관리하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계획은 본인이 직접 짜고, 그 계획이 실패해서 쓰라린 고생도 해봐야 "아,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 법인데 말이죠. 그런 시행착오의 연습이 쌓여야 나중에 진짜 세상을 살아갈 근육이 생기는 거니까요.


물론 누군가는 묻겠지요. "너라고 나중에 안 그러겠니?" 사실 저도 제 안의 불안이 저를 그렇게 만들까 봐 무섭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식적으로라도 아이보다 앞서 나가려는 저 자신을 자꾸 멈춰 세워보려 합니다. 제가 언제까지나 아이의 횡단보도를 대신 건너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조금 불안하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제 손을 놓고 횡단보도를 건너갈 때까지 묵묵히 뒤에서 지켜봐 주는 인내. 어쩌면 그것이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어른들에게 가장 필요한 진짜 교육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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