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로또에 당첨되면 좋겠다"라고 말합니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지 못한 이유는 학연, 지연, 혈연이 없어서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로또에 당첨돼 돈이 많아지고 학연, 지연, 혈연이 빵빵해지면 나는 축복받은 인생을 살게 될까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궁전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부악장인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이 당시 음악가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가 궁정 악장이니 그의 아버지는 그 바로 밑인 2인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모차르트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37세로 “18세기 후반 독일의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모두 그 책으로 공부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명저인 <바이올린 교본>을 출판했습니다.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독일 전역에 이름이 알려진 작곡가이자 교육자였고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였습니다.
막내 모차르트는 3살 때 누나 흉내를 내며 피아노 3도 음정을 짚었고, 5살 때는 배우지도 않은 바이올린을 연주했습니다. 음감이 뛰어났던 모차르트는 5살 때 이미 작곡을 시작했는데 훌륭한 음악가이자 교육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이른 나이에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아들의 천재적 재능을 발견하고 자식 교육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던집니다. 1762년 이후 바이올린 강습과 작곡을 모두 그만두고 두 자녀와 함께 연주여행을 떠납니다.
모차르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연주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그의 누나인 난넬은 “아버지는 우리를 서커스단 아이들처럼 데리고 다녔다”라고 불평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모차르트는 35년의 생애동안 3720일, 즉 10년 2개월 2일 동안 여행을 다녔고 독일, 오스트리아를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에 이어 이탈리아로 이어진 연주 여행 덕분에 상류층과의 밀접한 교류를 맺고 최고의 유명세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레오폴드, 어린 모차르트, 누나 난넬
모차르트는 어릴 때부터 귀족들과 함께해 부유한 삶의 방식을 경험했는데 그 때문인지 자신의 벌이에 비해 여유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세계 3대 악녀라고 하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부인 ‘소피아’,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 그리고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를 꼽습니다. 콘스탄체는 평소 사교모임과 사치를 즐겼는데 남편과 아내 모두 낭비벽이 심하니 2억에 달하는 연봉(오늘날 가치로 환산했을 때)에도 불구하고 많은 빚을 지게 됩니다.
모차르트는 재정난은 말년에 특히 심해져 병원에 갈 돈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모차르트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흥미로운 일화가 하나 있는데 그가 죽기 얼마 전 익명의 사람이 찾아와 그에게 큰돈(당시 대학교수 연봉의 5배에 달하는 작곡료를 제시하고 그의 절반을 선수금으로 지급)을 주면서 기한 내에 레퀴엠을 작곡해 달라고 주문합니다. 몸이 좋지 않았던 그는 레퀴엠을 작곡하다가 35살의 나이에 사망하고 맙니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르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모차르트를 과로사하게 만든 주범으로 나오지만 실제 모차르트에게 레퀴엠을 의뢰한 사람은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 일주기 기일에 모차르트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으로 발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모차르트에게 익명으로 레퀴엠 작곡을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작곡 도중 사망하게 되면서 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모차르트가 남긴 스케치를 토대로 곡을 완성합니다.
모차르트는 사망 당시 돈이 없어 주로 빈민들이 묻히는 빈 시립 성 마르크스 묘지에 매장하기로 했습니다.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던 모차르트였지만 그의 장례식은 초라하기 그지없었고 그날따라 을씨년스럽게 몰아친 눈보라 때문에 아무도 그의 영구 행렬을 따라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꾼들도 대충 아무 곳에나 묻어버려 지금도 그가 어디에 묻혔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모차르트 무덤(가묘)
모차르트는 생애 초반 귀족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상당한 돈을 벌었습니다. 성공의 정점에 있을 당시 그의 연봉은 하이든의 3배에 달했습니다.
유럽 각국의 왕실과 귀족 가문에서 후원을 받았지만 사회적 계급 구조에 대한 도전과 타파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조바니>를 발표하면서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피가로의 결혼> 마지막에는 백작이 하인과 여성들 앞에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당시 많은 귀족들은 이 장면을 보고 "혐오스럽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영광했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막을 내려야 했습니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돈조반니>는 방탕하고 무책임한 귀족인 돈 조반니가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고, 결국 그의 부도덕한 행동이 그를 파멸로 이끄는 이야기입니다. 이 오페라 내용은 귀족들로부터 큰 반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영감이 떠올랐을 때 빠르게 작곡하는 것은 모차르트의 작곡 스타일입니다. 그는 35살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음에도 600곡이 넘는 곡을 작곡했습니다.
음악 천재로써 어린 나이에 두각을 드러내 큰돈을 벌었지만 낭비벽이 심해 걸핏하면 빚을 졌고 자신의 능력에 맞춰 높은 연봉을 지불해 줄 후원자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굽히지 못한 그의 성격은 그토록 되고 싶었던 궁정악장이 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모차르트가 가지고 태어난 것만 보면 그는 분명 로또를 맞은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말년을 보면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보기에는 의문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