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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의 비애: 하이든

by yuri Nov 30. 2024

  천재 음악가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모차르트를 떠올리지만 하이든 역시 모차르트만큼 천재라는 말을 많이 들은 음악가입니다.


 <하이든 머리 도굴사건>은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인데 1809년 하이든이 세상을 떠나자 "유족들은 간소히 장례를 치뤄달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교회 묘지가 아닌 가문의 묘지에 그를 안장시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 1820년 하이든의 옛 고용주였던 에스테르하치 가문은 자신의 가문을 위해 헌신한 하이든을 에스테르하치 가문의 묘지로 안장시키기로 결정하고 하이든의 무덤을 발굴했는데 발굴하고 보니 놀랍게도 머리 없는 유골이 놓여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천재의 머리를 소유하고 있으면 자신과 자손들이 천재가 된다는 이상한 미신이 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베토벤이 죽고 난 후에 그의 친구들은 머리 도굴꾼이 베토벤의 머리를 가져갈까봐 밤새 묘지를 지켰다고 합니다.


  사건의 범인은 에스터하지 가의 비서 로젠바움과 주립 감옥소장 페터임이 밝혀졌고 로젠바움은 다른 사람의 머리를 하이든의 머리라고 속이고 에스테르하치 가문에 돌려줍니다.

 1829년 로젠바움이 사망하면서 그의 머리는 공범자 페터, 페터의 주치의 칼 헬러, 의사 겸 병리학자인 칼 폰 로키탄스키 등의 손을 거쳐 여기저기를 떠돌다 1895년 빈 악우협회에 기증됩니다.


  에스테르하지 가문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받은 가짜 머리를 진짜인 줄 알았고, 그 사이 하이든의 진짜 머리는 빈 악우협회 방문객의 관람 거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에스테르하치 가문을 새롭게 이끌고 있던 파울은 하이든 머리를 되찾아 온전한 유해를 안치할 계획을 세우고 하이든 탄생 200주년인 1932년 가문의 근거지인 아이젠슈타트 교회에 하이든을 위한 묏자리를 만들고 빈 악우협회에 하이든의 머리를 돌려 줄 것을 요청을 합니다. 하지만 빈 악우협회는 이를 거부했고 1954년 모든 소송이 마우리 되어 그가 죽은 지 145년이 지나서야 그의 머리는 자기 몸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젠슈타트의 에스테르하지 궁전아이젠슈타트의 에스테르하지 궁전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치 가문에 고용된 음악가였기 때문에 휴가를 떠나는 것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하이든 교향곡 제45번 <고별>은 휴가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담겨있습니다.

 에스테르하치 가문은 종종 여름에 가족과 하인들, 음악가들과 함께 에스테르하지 궁전이 있는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차(Esterháza) 지역으로 긴 휴양을 떠나곤 했습니다. 문제는 이 휴양이 종종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어 음악가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궁전에서 더 머무르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인데 음악가들은 가족과 떨어져 궁전에 장시간 머무르는 것에 불만이 쌓여 있었고, 이에 하이든에게 문제를 해결을 부탁합니다. 하이든은 고심 끝에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곡을 작곡합니다.


   <고별 교향곡>의 마지막은 미뉴에트가 잔잔하게 연주되는 동안 연주가들이 한 명씩 촛불을 끄고 무대에서 퇴장해 마지막에는 두 명의 바이올린 주자만 외롭게 남아 있습니다.

 다행히 후작은 이 메시지를 이해하고 재미있는 유머로 받아들여 “다들 갔으니 우리도 가야겠군”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월급쟁이들은 휴가를 쓸 때도 상사의 눈치를 봐야 되는 것 같습니다.


  하이든은 궁정악장으로서 음악가와 궁정 사이에서 중요한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는데 자신의 지위와 공작과의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악단의 요구나 불만을 유머와 지혜로 에스테르하치 공작에게 전달하여 음악가들의 복지와 만족을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하이든하이든




  지금은 음악을 감상하러 음악회에 가지만 예전에는 사교모임을 위해 음악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당시 음악회는 주로 사교와 담소를 위한 배경음악으로 여겨져 많은 귀족들이 음악회에서 졸거나 집중하지 않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이에 하이든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냅니다.


  하이든 교향곡 제94번 <놀람> 2악장은 처음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선율로 시작하다가 예상치못한 타이밍에 갑자기 큰 소리가 등장하면서 청중을 깜짝 놀래킵니다. 이 갑작스러운 큰 소리는 자고 있는 청중을 깨우고, 졸지 말고 음악에 집중하라는 하이든의 유머러스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놀람" 효과로 많은 청중들이 큰 소리에 놀라 깨어나거나 웃음을 터뜨렸기 때문에 이 곡은 "놀람 교향곡(Surprise Symphony)"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1808년경 하이든의 작품을 연주하는 콘서트홀을 묘사한 그림1808년경 하이든의 작품을 연주하는 콘서트홀을 묘사한 그림


  하이든 교향곡 제101번 <시계>는 2악장 반주음형이 시계 추가 똑딱이며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하이든은 평소에 이해심이 많고 너그러운 편이라 그가 이끌고 있던 악단의 연주자들은 언제나 지각을 하곤 했는데 참다못한 하이든은 연주자들에게 애원하듯이 "다른 곡도 아니고 오늘 같이 <시계>를 연습하는 날만이라도 제발 시간을 지켜달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이든은 모차르트와 24살의 나이차가 나지만 음악적 동료이자 친구였고, 베토벤의 공식적인 스승이었습니다.

 오늘날 그는 "교향곡의 아버지"와 "현악 4중주의 아버지"로 불리며, 고전 음악 형식의 틀을 확립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월급쟁이 음악가로 에스테르하치 가문을 위해 일했고 휴가조차 자유롭게 쓸 수 없었지만 에스테르하치 가문은 하이든에게 든든한 재정적 지원을 해줬고 그의 음악적 재능을 펼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하이든의 음악적 업적을 칭송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에게 직장생활의 처세술에 엄지척을 주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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