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오늘은 노력형 천재 베토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베토벤의 아버지는 궁정 가수였습니다.
그 역시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어린 아들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모차르트처럼 천재 음악가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베토벤 아버지는 다소 폭력적인 방법으로 그의 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베토벤은 4살 때부터 몇 시간 동안 방에만 갇힌 채 피아노를 쳐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술친구이자 선생이었던 토비아스 파이퍼는 한밤중에 베토벤을 깨워서 피아노 연주를 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 요한 판 베토벤이 이토록 가혹했던 이유는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그의 어린 아들을 이용해 이 나라, 저 나라 연주여행을 다니면서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 역시 자신의 아들을 이용해서 큰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베토벤을 학교도 보내지 않고 거의 집에 가두다시피 하며 음악에만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뛰어난 기술과 음악적 이해를 강요하며 자주 혼을 냈습니다. 때문에 베토벤은 사회적 활동이나 또래들과 어울릴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게다가 베토벤이 더 어린 나이에 음악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실제 나이보다 더 어리게 사람들을 속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린 베토벤의 집에 방문했던 사람들은 베토벤이 피아노 앞에 앉아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베토벤은 훗날 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의 나는 묘기 부리는 원숭이와 같았다. 피아노를 도끼로 부숴버리고 싶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 판 베토벤은 레오폴트 모차르트처럼 뛰어난 교육자도, 음악가도 아니었으나 이를 깨닫지 못한 그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베토벤에게 음악을 가르쳤고 이러한 증상은 그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카스파 폰 벤더부쉬 백작의 죽음 이후 알코올 중독과 함께 더 심해졌습니다.
베토벤은 많은 억압과 압박 속에 성장했으며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집안의 가장으로서 책임까지 떠안게 됩니다.
어린 시절 베토벤이 연주회를 통해 벌어온 돈은 그의 아버지가 술값으로 탕진했고, 궁정 오케스트라에 취직한 후에도 급여가 부족해 피아노 레슨을 통해 추가 수입을 얻어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베토벤
베토벤은 크게 4명의 스승을 뒀습니다. 그중에서 베토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크리스티안 고틀리프 네페입니다.
네페는 당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정확한 연주만을 강요받아왔던 베토벤에게 그는 템포와 음량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음악적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네페는 베토벤에게 곡을 만들고 연주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네페의 가르침에 보답이라도 하듯 베토벤은 밤낮으로 작곡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베토벤이 11살 때 네페는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오르간과 작곡을 가르칩니다.
베토벤이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본 그는 어린 베토벤을 궁정에 추천하고 그가 본의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1782년 베토벤은 12살의 나이로 네페의 도움을 받아 피아노 변주곡 C단조를 출판합니다.
네페는 베토벤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고 그가 보다 넓은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한 스승이었습니다.
베토벤은 피아노 배틀을 통해 유명세를 높였으며 즉흥연주에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루는 유명 피아니스트 다니엘 슈타이벨트와 대결하는데 먼저 연주한 상대의 음정과 선율을 즉석에서 정반대로 뒤집어 연주하는 묘기를 선보이여 상대를 기술적·음악적으로 압도했습니다.
당시 귀족 사회에서는 베토벤을 어떻게든 초청하기 위하여 경쟁이 붙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그는 귀족 부인이 무릎까지 꿇으며 간절하게 부탁한 앵콜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으며, 자신의 피아노 연주 중 대화를 나누는 귀족에게는 "돼지 새끼들에게는 연주해 줄 수 없다"라고 화를 내며 연주를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억압받으며 커서인지 그는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과 저항의식을 매우 강하게 나타냅니다.
42세의 베토벤은 대문호 괴테와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왕족들과 마주쳤는데 괴테는 정중하게 모자를 벗고 인사한데 반해 베토벤은 그들을 무시하고 뒷짐을 진 채 발걸음을 옮겼다고 합니다.
베토벤은 그 당시 괴테의 행동을 못마땅해하며 "한 나라의 스승이 되어야 할 시인이 반짝이는 것(돈, 명예, 권위 등)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게 말이 되나?"라고 저격했고 괴테는 베토벤에게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너무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불쾌해했고,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사 하는 괴테와 뒷짐지고 걸어가는 베토벤
베토벤은 그의 동생인 요한의 아들 카를에게 깊은 애정과 집착을 보였습니다. 카를은 베토벤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였고, 베토벤은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했습니다.
요한이 죽은 후, 베토벤은 카를을 자신의 양자로 삼으려고 했고, 그의 교육과 미래에 대해 많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카를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이에 반대했고 결국 소송을 통해 강제로 양육권을 뺐어오게 됩니다.
베토벤은 카를이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카를은 음악에 대한 흥미가 적고 재능이 부족했습니다.
베토벤의 압박감에 시달리며, 결국 음악을 배우고 연주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카를이 성인이 된 후에도 베토벤은 사사건건 그에게 간섭했고 그의 인생을 통제하려고 했습니다.
깊어지는 갈등에 우울증이 찾아온 카를은 권총 자살을 시도했고 다행히 총알이 비껴가며 죽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듬에 베토벤에게 작별을 고하고 군대에 입대합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베토벤은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모든 재산을 카를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베토벤
베토벤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고 대인관계에 큰 어려움을 겪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베토벤을 그의 아버지가 만들어낸 천재라고 말하지만 베토벤을 평생 트라우마 속에 갇혀 살게 만든 사람이 아버지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게 작곡가들은 떠나가는 영감을 붙잡기 위해 이곳저곳에 악보를 그리는 모습이 연출되곤 합니다. 이 모습은 바로 베토벤의 평상시 모습인데 실제로 그는 메모광으로 곡을 작곡하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 등을 이곳저곳에 메모로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은 짧은 모티브를 집요하게 반복·발전시키면서 대곡을 쓰는 작곡가입니다. 모차르트와는 정반대의 작곡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성격도 정반대로 다혈질에 신경질적입니다.
그의 집요함은 교향곡 5번 <운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는데 도입부에 등장하는 '빠빠빠 빰~'의 짧은 모티브가 곡 전체에 걸쳐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발전됩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도입부
여러분은 천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의 인생은 행복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