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리스트 역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아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2019년에 tvN에서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하립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그 대가로 뛰어난 작곡 실력을 얻게 됩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뛰어난 연주 실력을 얻게 됐다"는 이야기는 평생 파가니니를 따라다니던 소문이었습니다.
파가니니는 뛰어난 연주실력만큼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칩니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자신을 신비로운 천재로 여기게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악마를 활용한 마케팅입니다.
바이올린의 날카로운 음색과 고음은 사람들에게 바이올린을 악마의 악기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파가니니는 이를 활용하여 자신에게 악마 이미지를 덧입히려는 노력을 합니다.
파가니니는 매우 복잡하고 기교적인 연주를 즐겨했는데 한 손으로 여러 줄을 동시에 연주하기도 하고 넓은 음역대의 음들을 매우 빠르게 연주하는 등 완성도 높은 곡을 연주했습니다. 이는 당시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파가니니를 보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그런 실력을 얻었다"고 말하게 됩니다.
"악마와의 거래 이야기"가 여기저기 퍼져나가게 된 데에는 파가니니의 외모도 한 목을 했는데 그는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창백한 얼굴, 깊은 눈, 길고 가는 손가락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외모 덕분에 사람들은 그를 신비롭고 비현실적인 존재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파가니니는 무대에서는 주로 검은색 옷을 입고 등장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볼때 어둠과 연관시켜 생각하기를 바래서 였던 것 같습니다.
파가니니 공연의 광고물, 1831
파가니니는 드라마틱한 몸짓과 표정을 섞어가며 연주했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파가니니의 공연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의 연주회 후에는 많은 여성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몰려들었으며, 편지를 보내거나 선물을 주는 등의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
파가니니는 단순한 음악가를 넘어서 당시 대중문화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연주 도중 극적인 장면을 자주 연출하곤 했는데 일부러 공연 중 바이올린의 줄이 끊어지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고 바이올린에 줄을 한두개 정도만 남겨 둔 최악의 상태에서 완벽한 연주를 관객들에게 선사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는데 어느 날 파가니니는 대규모 관중 앞에서 어려운 곡을 연주하던 중 바이올린 줄이 하나씩 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줄이 끊어질 때마다 연주를 멈추지 않고 남은 줄로 즉흥 연주를 이어나갔고 결국 세 줄이 모두 끊어져 마지막 한 줄만 남은 상황에서 그는 단 한 줄만으로 연주를 무사히 끝마쳤다고 합니다. 관중들은 그의 모습에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그는 "파가니니와 한 줄!"이라고 외치며 한 줄로 앵콜 연주까지 했다고 합니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솔리스트로 무대에 올라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음악가 입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혼자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초능력자처럼 비춰졌을 것입니다.
파가니니는 소문을 이용한 마케팅도 펼쳤는데 그가 직접적으로 자신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사람들이 그에 대한 신비로운 소문을 퍼뜨리도록 만들었습니다. 특히 감옥에서 연주했다는 소문이나 아픈 상태에서 환각을 경험했다는 이야기 등은 대중에게 매우 자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90년대만 하더라도 아이돌들은 신비로운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마케팅 전력 중 하나였기 때문에 대중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했습니다. 파가니니 역시 이런 모습을 보이는데 그가 공연 후 대중과의 접촉을 피한 이유는 신비주의 전략이라기보다는 얻어걸린 것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파가니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하루에 10-15시간씩 연습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공연 외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에 할애했습니다. 또한 그는 평생에 걸쳐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외부 활동에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공연 후 대중들을 만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심각한 도박 중독이었기 때문입니다. 파가니니는 공연으로 번 돈의 대부분을 도박으로 탕진하고 여러 차례 자신의 바이올린을 담보로 해서 돈을 빌렸습니다.
바이올린이 비싸봐야 얼마나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겠지만 당시 파가니니가 담보로 내놓은 그의 바이올린 과르네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희귀한 악기 중 하나로 예술적 가치와 희소성으로 인해 매 거래마다 그 가치를 갱신하고 있는 악기입니다. 2010년에 1741년산 과르네리 비외탕(vieuxtemps)이 약 1,600만 달러(한화로 약 200억 원)에 경매에서 낙찰되었다고 하니 악기 하나가 가지는 금전적 가치가 얼마나 큰지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가 아끼던 바이올린을 잃어버릴 뻔한 것을 계기로 도박을 그만두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말년에 카지노 투자 실패로 그동안 어렵게 모은 재산의 상당 부분을 날려버리고 파산 직전까지 이르게 됩니다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를 보면 파가니니가 카프리스 24번을 연주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영상을 보시면 당대 파가니니의 인기가 어느정도 였을지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카프리트 24번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곡입니다. 강렬한 리듬과 선명한 멜로디로 시작해서 다양한 연주 기법을 사용해 주제를 변형하고 발전시키다가 짧고 화려한 코다로 마무리됩니다.
카프리스 24번은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곡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곡으로 다양한 기교와 감정 표현이 예술인 곡입니다.
영화 <파가니니> 중 파가니니가 카르리스 24번을 연주하는 장면
여러분들이 리스트 피아노 작품으로 알고 계시는 "라캄파넬라" 역시 파가니니가 작곡한 바이올린 곡 중 하나로 리스트가 이를 피아노를 위한 변주곡으로 편곡한 것입니다.
"라 캄파넬라"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종"이라는 뜻으로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리스트가 편곡한 "라캄페넬라" 역시 피아노 레퍼토리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곡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곡으로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고 싶었던 리스트의 마음이 엿보이는 것 같습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는 뛰어난 실력도 필요하지만 대중에게 나를 각인시킬 수 있는 이미지 역시 중요합니다.
요즘 아이돌들은 각자의 서사와 배경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EXO의 경우 각 멤버별로 고유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가니니를 보면서 지금의 아이돌 마케팅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실력도 필요하지만 나를 어떻게 포장할지와 관련된 마케팅 역시 중요합니다.
실력 있다고 모두가 다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듯이 나를 어떻게 홍보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