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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Nov 24. 2024

특기를 살리자: 비발디

  자본주의는 각자가 시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최대의 효율성을 추구하는데 주안점을 둡니다. 때문에 자신이 잘하는 일을 통해 더 큰 성과를 내는 것을 강조합니다.

 

  <2024 트렌드 코리아>(김난도, 전미영 외 9명. 미래의 창. 2023)에서는 2024년도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로 육각형 인간을 뽑았습니다.

 육각형 인간이란 외모,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성격, 특기 등 여러 측면에서 완벽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완벽해지기를 원합니다. 아이돌들을 보면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춥니다. 심지어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습니다.


  사람인 이상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전체가 아닌 내가 보고 싶은 단면만 짜깁기해서 보기 때문에 완벽하게 보일 뿐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그 어떤 신도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않습니다. 신도 실수를 하고 후회를 하고 각자 잘하는 분야가 다 다릅니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하다가는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습니다.




  바로크 3대 음악가를 꼽으라고 하면 비발디, 헨델, 바흐를 꼽습니다. 헨델과 바흐에 비해 비발디는 유독 현악기 특히 바이올린을 위한 곡을 많이 작곡을 합니다.


  비발디는 원래 직업은 음악가가 아닌 사재였습니다. 머리가 붉은색이었기 때문에 붉은 머리 사재로 유명했니다.


  비발디는 누구보다 음악에 진심이었는데 악상이 떠오르면 어떤 상황이라도 기필코 작곡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미사 전례를 걸핏하면 빼먹어 동료들이 한참 찾아다니게 만들고, 미사 도중에 영감이 떠오르면 숨어서 푸가 작곡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비발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있는 산 마르코 대성당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지오반니 바티스타 비발디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뛰어노는 게 힘들었던 그에게 바이올린은 좋은 친구였습니다. 신학 공부를 하면서도 아버지에게 틈틈이 바이올린을 배웠습니다.

 유전적인 이유로 머리카락 색깔이 빨간색인 것인데 사람들은 이를 좋게 보지 않아 " 저 머리색 좀 봐~ 신부가 될 사람이 빨강머리라니…",  "미사 도중에 뛰쳐나가는 일도 많다며?",  "매일 이상한 음악만 작곡한데"라고 수군거렸다고 합니다.

붉은 머리카락의 비발디


  신부가 된 후에도 비발디는 허약한 몸 때문에 미사를 집전하기 힘들어 1703년부터 1740년에 걸쳐 베네치아의 여자 고아원 겸 음악학교였던 피에타 고아원(Ospedale Della Pieta)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비발디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바이올린 교사로 활동했습니다. 고아나 사생아 출신의 소녀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다가 그의 뛰어난 작곡지휘 실력으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는데 1716년 "마에스트로 디 콘체르티(Maestro di Concerti)", 즉 합주장 또는 음악 감독의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 역할은 단순히 교육을 넘어서 고아원의 합주단과 성악단을 이끌고, 그들을 위해 새로운 작품을 작곡하고 공연, 지휘하는 모든 것을 포함했습니다.


  비발디는 매우 유능한 음악 교사였기 때문에 이곳의 여학생들은 아주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돼 이들의 연주를 보기 위해 베네치아의 시민뿐만 아니라 외국인들까지 방문했다고 합니다. 비발디가 작곡한 수많은 작품들 바로 학생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피에타 고아원은 음악으로 원래 유명한 곳이었지만 비발디로 인해 더 유명해진 것이죠….

피에타 고아원 자리에 세워진 베네치아 '방문의 성모 피에타 교회'

  뛰어난 작곡가와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연주자가 만나 비발디는 자신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더욱 넓히게 됩니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적 실험을 많이 시도했고 다양한 합주곡과 여성 합창곡을 작곡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비발디 <사계>도 이곳에 근무하면서 작곡한 곡입니다.


 비발디 <사계>는 바이올린 선율이 특히 아름다운 곡입니다.

이 곡에는 작가를 알 수 없는 짧은 시(소네트)가 계절마다 붙어 있어 곡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짧은 시(소네트)를 비발디가 직접 썼다는 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계> 중 여름 3악장을 좋아하는데 폭풍우를 모티브로 해서 작곡된 곡이라 그런지 바이올린의 빠르고 긴박한 선율등이 매우 인상적으로 들립니다.




  바이올린 연주자, 작곡가로 유명해진 비발디는 점점 욕심이 커져 오페라에도 손을 댑니다.

 초반에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오페라로 잇단 실패를 거듭하게 되고 한 소프라노 가수와의 염문으로 구설수에 오르자 교회와 베네치아의 청중은 그에게 빠르게 등을 돌립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비발디는 자신의 후원자였던 카를 6세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하지만 그는 비발디가 빈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버립니다. 실의에 빠진 비발디는 빈민촌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다가 지병이었던 천식으로 빈에서 객사하게 됩니다.


  당시 골도니라는 비평가는 비발디에게 "비발디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는 만점, 작곡가로서는 그저 그렇고, 신부로서는 빵점이다."라는 말을 남겼고 합니다.




  한때는 "베니스의 왕자"라고 불렸지만 말년에는 외롭게 빈민 묘지에 안장된 그의 삶을 보면 "삶이란 알 수 없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에 있어서 '만일…'이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비발디가 소프라노 가수와의 염문설에 휩쓸리지 않았다면…', '만일 비발디가 오페라에 손을 대지 않았다면…' 그는 다른 말련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역시 가늘고 길게 가기 위해서는 본업에 충실한 게 최고인 것 같습니다.




  간혹  아래의 사진을 보시고 비발디를 여자로 착각하는 분이 계신데 이 당시는 우리가 격식을 차리고 싶을 때 정장을 입는 것처럼 흰색의 꼬불머리 가발을 쓰는 게 예의였습니다.

비발디 초상화(1)


p.s 또 다른 비발디의 초상화인데 앞의 그림과 지금의 그림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 않나요? 도대체 진짜 비발디의 얼굴은 어디에 가까운 것일까요 :)

비발디 초상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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