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에 유명한 작곡가 두 명을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흐와 헨델을 꼽을 것입니다.
이 둘은 1685년 3월에 독일에서 태어난 것은 같지만 헨델은 영국으로 귀화해 죽을 때까지 떵떵거리고 산데 반해, 바흐는 평생 독일 내에서 생계형 음악가로서 자식을 먹여 살릴 돈을 벌기 위해 매일매일 작곡에 전념해야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헨델은 정치적으로 성공한 궁정음악가의 삶을 산데 반해, 바흐는 주로 교회 음악가로서의 삶을 삽니다.
중세라면 모든 권력과 돈이 교회로 향했겠지만 바로크 시대는 절대왕정의 시대입니다. 돈과 권력이 궁정으로 향합니다.
이 당시 음악가들은 프리랜서가 아닌 월급쟁이의 삶을 살았습니다. 때문에 음악가로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돈 많은 궁정. 특히 음악에 관심이 많은 후원자가 있는 궁정에서 음악가로 활동해야지만 금전적으로 여유있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흐는 신념과 소명의식 등의 이유로 인생의 많은 부분을 교회 음악가로 활동합니다.
바흐 사망 후 그의 음악은 비음악인들의 기억 속에 점차 사라져 갔지만그의 아들들(특히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과 제자들의 노력 덕분에 후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바흐의 음악은 고전주의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는데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에 나타나는 대위법과 합창법 등의 작곡기법은 대부분 바흐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라고 합니다.
베토벤은 바흐를 가리켜 "그는 Bach(실개천)가 아니라 Meer(바다)라고 불려야 한다(Nicht Bach, sondern Meer sollte er heißen)."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리만 가설을 증명한 가상의 탈북 수학자 이야기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주인공 이학성은 "바흐는 음악의 시작이자 끝이다. 세상의 음악이 다 사라진다 해도 바흐의 음악만 있으면 복원할 수 있다"라는 말을 합니다.
1977년 우주로 발사된 보이저 1호에는 90분 분량의 음악 트랙이 담긴 ‘황금레코드’(Golden Record)가 실려있는데 27개의 트랙 중 7곡이 클래식 음악입니다. 그 7곡 중에서 무려 3곡이 바흐 음악이라고 합니다.(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1악장,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3번 중 가보트와 론도,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권 중 1번 프렐루드와 푸가)
최근에 어디에서 글을 하나 읽는데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가 된 이유는 자식이 많은 정력왕이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수많은 음악가들이 그의 곡을 통해 음악 공부를 했으며 화성학, 대위법 등 작곡에 있어서 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흐의 음악을 복원하기 위해 애쓴 존 앨리엇 가드너는 "모든 사람이 신을 밎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음악가는 바흐를 믿는다"라는 말을 했습니다.바흐 곡의 멜로디는 힙합, 팝, 록 등의 다양한 장르에서 발견되는데 일부 힙합 아티스트들은 바흐의 음악을 샘플링해서 곡을 만들기도 합니다.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는 만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면에 삽입된 곡으로 드라마틱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순간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인 곡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좌절브금(띠로리~)"으로 더 유명합니다.
롯데 콘서트 홀의 파이프 오르간 모습
첼로는 오케스트라에서 저음부를 담당하는 악기로 바흐 이전에는 첼로가 독주악기로 연주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바흐는<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통해 조연이던 첼로를 주연으로 만듭니다. 이 모음곡의 첫번째 곡인 "프렐류드"는 가전 광고 음악에 특히 많이 사용되어 듣자마자 '아! 나 이 곡 알아'라고 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이곡은 역사상 무반주 첼로 솔로를 위해 쓰인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는 많은 음악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음악의 아버지라는 별명이붙게 된 것이지 자식이 많아서 붙여진 별명이 아닙니다.
간혹 헨델에게 음악의 어머니라는 별명이 붙어서 "헨델이 여자인가요?"라는 질문을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헨델은 영국인에게 있어 자부심과 같은 인물입니다. 헨델의 음악은 그가 죽고 난 후에도 수많은 영국인들에게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비슷하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음악의 어머니라는 별명이 붙인 것입니다.
바흐는 자식만 20명에 달했는데 그중 10명 만이 성인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많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주 교회에 새로운 음악 선보여야 했던 노동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 바흐는 작곡가로서만 활동하던 것이 아니라 교회 음악감독도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곡할 시간이 없어 그의 이전 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와서 새로운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바흐는 교육열 역시 대단한 사람이였는데자신의 아들들에게 "음악가로서 귀족, 왕족들에게 하인 취급받지 않으려면 학력을 갖추어야 한다"라고 충고했다고 합니다.
바흐 가문은 200년간 약 60여 명의 작곡자를 배출한 뛰어난 음악 가문이입니다. 그의 자식들 중에걸출한 인물로는 장남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 둘째 카를 필리프 엠마누엘 바흐, 막내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가 있습니다.
특히 막내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는 그의 아버지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재조명되기 전까지 아버지 보다 더 유명한 작곡가였으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우정이 매우 깊었습니다.
실제로 8살 모차르트는 바흐의 막내 아들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에게서 작곡법을 배웠으며, 그의 무릎 위에 앉아 함께 연탄곡을 연주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돈벌이는 그럭저럭 괜찮았기만 관리에 능하지 못해 비서가 돈을 몽땅 횡령하고 튀는 바람에 말년에 가난과 빚더미에 시달리다가 47살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바흐와 헨델은 출생 연도도 같고 태어난 국가도 독일로 같습니다. 둘 다 넘치는 음악적 열정을 불태웠으며 말년에는 같은 돌팔이 의사에게 각자 수술을 받고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됩니다.
여러분이라면 둘 중 어떤 사람의 인생을 살고 싶으신가요?
정반대의 전략을 사용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 성공한 음악가가 되었으니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 다니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음악만을 꾸준히 하면서 존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