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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위한 미국 백수남편의 밥상

영양과 맛을 잡기 위한 남편의 외조

by 리치스피커

젊은 시절 배워둔 요리로 미국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재주가 있다. 특히나 한인마트가 없는 미국 시골에서는 한정된 재료로 맛있는 것을 해 먹어야 하는 고난도 미션이 매일 주어진다. 처음에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식탁도 없어서 바닥에 앉아서 대충 아무거나 사다가 먹었다. 이제는 적응해서 많은 것을 해 먹기 시작했다.

D3DB2753-5E1A-4E45-80FB-2EA77C82A841_4_5005_c.jpeg 미국에 도착해서 다음날 처음 먹은 아침 식사
건강한 음식

아내는 연애 때부터 자주 몸이 아팠고, 결혼하고는 여러 가지 병을 앓는 모습을 보고 식사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스트레스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하기가 어려운데 건강이 문제를 일으키면 정말 상황이 힘들어질 것이란 생각에 아내를 위한 건강식은 최소 일주일에 3~4일 정도 준비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건강식이 내 입맛에는 너무 맛이 없고 음식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6699B610-24BF-4666-8E2A-1864F9EDEB30_4_5005_c.jpeg 아침에 먹는 야채주스

아침에는 건강한 주스를 만들어 마신다. 케일, 당근, 키위, 사과, 레몬을 넣고 알룰로스와 물을 섞어 갈면 맛있고 건강한 야채주스가 만들어진다. 아내는 이 주스를 내가 만들어 먹인 뒤부터 매우 자신의 몸이 건강하다고 느껴진다고 한다.

FF4AC663-2B73-4634-B32E-EC165324A914_4_5005_c.jpeg 구운 야채와 닭다리살

저녁 건강식으로는 쥬키니, 당근, 아스파라거스, 감자, 버섯 등의 야채들과 닭다리살을 오븐에 구워서 먹는다. 사실 닭 가슴살을 먹으면 가장 건강하겠지만 너무 퍽퍽한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를 위해 닭다리살로 와이프와 합의했다. 간단한 야채 손질과 오븐에 굽기만 하기 때문에 저녁에 너무 많은 음식을 차리지 않아도 건강한 간편식으로 주로 우리 부부가 미국에서 먹는 음식들이다.

별미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음식들이 미국에서는 크게 별미가 되곤 한다. 특히나 한국 식당이 없는 지역일수록 한국 음식은 그리움과 동시에 비싼 외식 요리가 되기 때문에 집에서 특별히 영양 보충 혹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별미 음식을 주기적으로 해 먹어야 한다.

6376F504-B6ED-47E7-BB73-2F65E76FF778_1_102_a.jpeg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삼겹살과 비빔국수

우리 부부가 미국에 와서 가장 행복하게 별미로 즐기는 음식은 삼겹살과 비빔국수를 먹는 날이다. 삼겹살은 처음에 마트에서 구하지 못해서 먹지 못하고 있다가 차가 생기고 나서 10마일 정도 떨어진 정육점까지 가서 구해오기 시작했다. 김치에 설탕, 고추장, 참기름 등을 섞어서 양념을 하고, 삶은 소면에 각종 야채들을 넣어 비빈다음 고기와 함께 먹으면 정말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리는 천국의 맛을 느낄 수 있다.

F8612771-03AE-448F-8F61-7C108A599984_1_102_a.jpeg 오븐에 구운 삼겹살과 공심채

삼겹살이 기름이 많이 튀다 보니 뒤처리가 너무 어려워서 최근에 개발한 메뉴가 삼겹살 오븐 바비큐이다. 그리고 태국에 놀러 가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공심채 볶음을 아시아 마트에서 사다가 같이 곁들여 먹으면 정말 맛있다. 게다가 된장찌개는 빼놓을 수 없는 한국인의 소울푸드니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베이킹

미국의 빵은 정말 맛있는 집을 찾기가 어렵다. 주로 여긴 시골이기 때문에 마트에서 사다가 먹는데 식빵이나 바게트류 말고는 너무 달고 기름지기 때문에 내 살들만 좋아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먹던 추억이 빵들을 집에서 직접 해 먹는다.

36AF3320-7DD5-442C-A77B-B24B162C6CD9_4_5005_c.jpeg 꽈배기

이상하게 먹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꽈배기 었다. 꽈배기는 한국에서 경성꽈배기 같은 길거리에서 싸게 자주 사 먹었었는데 미국에 오니 찾아보기 어려운 빵 중에 하나가 되었다. 물론 여기도 꽈배기가 있다. 다만 한국의 그 쫄깃한 식감의 꽈배기가 아닌 부드러운 식감의 빵 같은 꽈배기다.

EDAF99B2-D3B0-4154-8AC4-95D4F46D18D5_4_5005_c.jpeg 집에서 직접 만든 카스텔라

한국에서 파리바게트의 허니 카스텔라와 우유를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있어서 집에서 카스텔라도 해 먹기 시작했다. 한인 교회 집사님들과 구역모임을 할 때 한 번씩 해가면 인기 만점의 디저트이다. 그런데 최근에 미국의 조류독감으로 인해 계란 값이 2배가 넘게 오르면서 계란이 많이 들어가는 카스텔라는 자주 해 먹지 못하는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7433F38D-029A-48CF-8A65-0BE0B8127B4C_1_201_a.heic 최근에 만든 소보로

비싸진 계란 탓에 카스텔라 대신 찾은 빵이 바로 소보로이다. 미국은 소보로가 한국 빵집이 아니면 찾기 어렵다. 아니 사실 이 빵을 부를 수 있는 영어 이름이 없다. 생긴 건 스콘처럼 생겼지만 맛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에게는 엄청 생소한 빵이다. 이 소보로를 미국에서 내가 직접 하는 것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일상에서 하나의 집안일처럼 해 먹는 중이다.

피곤하지만 사랑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이 다양해질수록 아내와 나의 미국 일상이 점점 꽉 채워지는 느낌이 있다. 한국은 배달음식이 잘 되어 있고,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상권이 있어서 쉽게 사 먹을 수 있지만 미국은 차를 타고 나가서 사 오거나 자칫 우리처럼 미국 시골로 오게 되면 비행기 타고 나가야 먹을 수 있는 음식들도 생긴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아내를 위한 음식에 정성을 담아 준비하고 아내는 그것을 맛있게 먹다 보면 서로 행복한 하루가 마무리된다. 사랑을 어떠한 말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서로 느끼는 점이 행복하다면 피곤한 하루도 이 사랑이란 단어로 마무리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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