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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수가 무시당하지 않고 당당히 사는 방법

돈은 문제가 아니다.

by 리치스피커

미국 도착 후 3개월이 지날 때쯤 마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우울감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 아니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시점에 나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약한 모습이 드러났다.

아시안 다람쥐

미국에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 유학 경험이 있는 한 동생과 통화를 했던 말이 기억난다.

- 나 : "여기 너무 사람들이 키도 크고, 덩치도 커, 힘도 세 보이고 무섭다ㅎㅎ"

- 아는 동생 :"형, 저는 넘 작아서 유학생 때 다람쥐 같았어요."

이 말이 너무 웃기기도 하면서 슬펐다. 물론 신체적으로 미국 사람들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평균적으로 동양인은 왜소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일단 모든 환경이 한국에서 경험했던 것보다는 모든 것이 크기가 "크다". 피자 한판의 크기도 크고, 음료수 컵도 크다. 이 크기에 살짝 위축이 되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이 든다. 나는 그동안 참 작은 세상에서 살았던 것 같다.

9DAD4226-DFDF-4DA1-AC7A-3A9C9D17C504_1_102_o.jpeg 집 앞에 돌아다니고 있는 청설모
나를 드러내는 차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그동안 나는 작은 세상에서 작은 사람으로 살았으니 지금 나는 미국 사람들 눈에는 작아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차를 알아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차에 대한 생각을 보면 한국과 미국에서 사람들의 인식이 다르다는 것을 조금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 경험한 차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브랜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벤츠, BMW 뿐만 아니라 포르셰 같은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보였다. 미국도 고급 브랜드에 대해 선호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것보다도 이상하게 "트럭"에 대한 집착이 있다. 자동차 딜러샵에 처음에 갈 때 내가 타고 간 차는 렌터카였다. 렌터카이긴 했지만 이사를 준비해야 해서 포드의 F-150이라는 픽업트럭을 타고 딜러샵에 가서 차를 구경했다.

2024-ford-f-150-lariat-exterior-101-64ff7459abf73.jpg?crop=0.793xw:0.771xh;0.135xw,0.188xh&resize=2048:* 포드 픽업트럭 F-150

아시아인이라는 핸디캡이 있어서 약간은 무시받을 줄 알았건만 픽업트럭을 타고 딜러샵에서 내리면 반갑게 딜러들이 마중 나와줬다. 물론 형편없는 나의 영어를 들으면 그제야 조금 당황하는 것 같긴 했다. 그래도 난 다리를 꼬고 아주 사장인 것 마냥 이차 저차 물어봐도 전혀 거리낌 없이 친절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미국 현지인들의 집을 방문할 때도 픽업트럭을 끌고 집 앞에 차를 대면 사람들이 물어봤다. 이거 너 차니? 와우 너무 좋다. 하면서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한국은 브랜드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국은 트럭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경험이었다. 물론 렌터카로 어깨에 힘주고 다닌 것은 너무 웃긴 행동이지만 이후 구매한 차량도 미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SUV로 선택했고, 아직까지 백수지만 나는 이 정도 되는 차를 가진 사람이야라는 나만의 만족감으로 즐기며 살고 있다.

2020-Honda-Pilot-LX.png 현재 내가 보유한 HONDA PILOT


노는 게 아니라 성공의 과정일 뿐

직장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이 드는 것 중에 하나가 "나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위해 지금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직장생활 3년 차부터 대게 많이 들고 그때부터 사회의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연봉도 비교하고 미래 비전도 비교하기 시작한다. 그제야 전문직이나 대기업 중에서도 연봉 높은 뛰어난 사람들을 바라보며 심리적으로 갈등이 발생하는 것 같다.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반, 그들과 나는 달라라는 생각이 반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위로하거나 현재 상황을 회피하며 그냥 그 상황에 순응하면서 20년 이상을 보낸다. 그렇게 누군가는 임원이 되고, 누군가는 이직을 하고, 누군가 승진은 못하면서 꾸역꾸역 일하다가 결국 퇴직을 한다. 저마다의 가치관이 있고, 상황이 있으니 어느 것 하나 무시하거나 비하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살아봐야 40~50년 더 살 것 같은데 내가 그중의 절반을 회사에서 다른 사람 돈을 벌어다주기 위해 애쓰면서 많은 감정적 노동과 육체적 노동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큰 회의감을 느꼈다. 그래서 입사 7년 차가 되던 해에 회사를 다니면서 쇼핑몰을 열고, 투자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다.

어느덧 계좌가 불어나고 어느 정도 주식에 대하여 이해하기 시작할 무렵 지금은 작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주식에 대한 지식을 전달해 주는 스터디모임을 운영하게 되었다. 강의를 하는 것은 상당히 피곤하고 에너지 소모가 많지만 이상하게 주식에 대한 열정과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은 나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고,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나는 미국에서 백수다. 하지만 난 전업투자자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성공을 위해 매일 끊임없이 노력하고 직장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도전할 뿐이다. 나를 소개할 때 난 Stock trader(Inverstor)라고 소개한다. 펀드 매니저로 착각하는 사람을 만날 때 설명이 귀찮아서 그냥 응 맞아라고 할 때도 있지만 누가 뭐라 하더라도 나는 주식 투자를 좋아하는 개인 투자자이고 데일리 트레이더다. 그리고 미국에서 10년 뒤 당당히 마이너 중에 마이너인 아시아 백수 남자로 성공하는 스토리를 써내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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