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주식하며 멘탈 관리하기
미국에서 주식하며 살면서 멘탈 관리하기
2015년 나의 첫 투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주변 지인의 추천으로 계좌를 계설 한 것이 시작이었다. 무슨 일을 시작 할 때 거창한 계획만큼 부질 없는 것이 또 없다는 말이 유독 와 닿는 때이다. 나의 주식 인생은 아직 크게 성공했다고 말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허접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리치스피커"라는 예명으로 주변 지인부터 나의 주식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 이후에도 나에게 위기는 찾아왔다.
탄핵을 두 번 겪다
주식에서 가장 황당한 일은 갑작스런 시장에 충격이 가해질만한 거대한 뉴스가 나올 때이다. 2015년 하반기에 처음으로 직장에 들어갔다. 월급을 차곡 차곡 모으다 보니 몇 달 뒤에 500만원이라는 소중한 돈이 모였다. 그렇게 소중한 돈을 통장에 두고 이자라는 것을 은행에 고스란히 넣어놓고 받아보려고 하니까 한달에 100원도 받기 어려웠다. 뭔가 내가 몇달간 고생해서 모은 돈이 불어나는 속도가 상당히 작고 보잘 것 없게 느껴진 것 같았다. 그래서 주변 동료 사원 중에 꽤나 잘 사는 친구가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보니 주식 투자를 해서 재미를 보는 것 같았다. 부럽기도 하고 뭔가 자존심도 상하는 것 같아서 쉽게 물어보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패션/유통 회사의 전략기획실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옷입는 것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두었음에도 대학시절 마땅한 돈도 없었고, 패션이라곤 도서관이나 열람실에서 입던 츄리링이 전부였기에 회사에서도 옷을 못입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잘 사는 친구가 나를 옷입는 법을 도와주겠다고 50만원만 준비하라고 했다. 내 종자돈 500만원에서 10%나 차지하던 50만원을 옷에다가 쓰려고하니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솔직히 난 돈 쓰기 아깝다고 말하자 그 친구가 그러면 자기가 주식 정보를 알려줄테니 수익이 나면 그 수익금으로 옷을 사라고 했다. 그렇게 알려준 첫 주식 LG생활건강을 500만원어치 샀고, 그리고 한달 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면서 그 주식은 -50%가 되었다. 어려운 마음을 뒤로 하고 꾹 참고 기다렸다. 그리고 생각했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기다린 뒤에야 -50%가 +10%로 바뀌었다. 그렇게 내가 50만원의 수익을 본 뒤에 LG생활 건강은 내가 판 가격보다 2.5배가 되었다. 그 뒤로 10년 뒤 2024년 12월 나는 또 한번 계엄이란 초유의 사태와 탄핵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사면 꼭지, 팔면 저점
처음 주식 시장을 경험하니 신기했다. 돈이 뭔가 쉽게 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왜 사람들이 주식한다고 하면 망한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에 회사의 주변 동료중에 한명이 코인을 한다고 주변에 추천하고 다녔다. 이때가 2017년도 쯤이었던 것 같은데 비트코인 사라고 얼마나 떠들고 다니던지 그 동료의 말을 뜯고 그게 뭔지도 모르고 일단 조금 샀다. 그랬더니 막 몇일 뒤에 100%이상의 수익이 나는 것을 보고 눈이 돌아갔던것 같다. 당시에 또 차곡차곡 쌓아둔 나의 돈 1000만원을 모두 코인에 넣었다. 그때 가격이 비트코인이 2500만원정도로 가장 높날이었고, 그 뒤로 -80%를 경험하며 3년을 참고 인내한 끝에 2020년 본전에 나왔건만 그 뒤로 비트 코인이 8000만원이 넘어가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의 나의 심정은 -80일 때보다 8000만원을 찍은 비트코인을 바라 볼 때 더 참담하고 힘들었다. 그동안 3년간 물이라도 탈 걸이라는 후회가 너무나 크게 밀려와서 눈물이 났다.
더 짜증나는 일은 코로나 전 후로 한번 더 일어났다. 코인에 물려있으니 다른 투자라도 해보려고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에 온라인 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고 네이버를 주당 17만원에 500만원어치를 샀다. 그런데 두달 뒤 코로나가 터지고 -40%를 경험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겪으면서 몇달 뒤 시장이 회복하자마자 기쁜 마음에 팔았는데 그 뒤로 네이버는 3배인 50만원에 도달했다. 코인과 네이버를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번호는 알았는데 로또를 사지 않아서 놓친 기분과도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실패인지 성공인지 알 수 없는 나의 몇년간의 투자 경험으로 분노와 오기가 가득찬 눈으로 투자 시장을 매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시장을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고, 아예 지금은 전업투자자로 생활하고 있다.
자살 생각만 수십번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식을 하는 것과 전업으로 주식을 하는 것은 심리적 압박이 수백 수천배 차이가 난다. 월급이라는 꾸준한 수입이 주는 안정감은 조금의 손실은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준다. 하지만 벌지 못하면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전업은 하루 하루 손실에 조바심과 격분을 겪기 마련이다. 코인하다가 손실본 사람들이 눈물, 콧물 흘리며 우는 모습이나 모니터 부수는 짤을 보면서 "왜 저래~?"라는 생각이 지금은 "아.. 저기분 알지..."라는 생각으로 바뀐다. 나도 주식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큰 돈을 잃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큰 돈을 한번에 잃은 것도 힘들지만 내가 가장 힘든 시기는 오히려 큰 돈 보다는 매일 돈을 잃을 때였다. 미국에 오고 나서 거래를 하는 시간과 패턴이 바뀌면서 거의 3개월을 계속 연속으로 돈을 벌지 못했다. 그렇다고 큰 돈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남들 한달 월급 정도를 3개월에 걸쳐서 차근차근 갉아 먹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을 미치게 했다. 매일 조금씩 계속 끊임 없이 잃었다. 뭔가 내 스스로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모른 채 시장에서 클릭 클릭하며 돈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무엇보다 미국이란 나라에 오면서 쓸 수밖에 없는 초기 정착금과 말도 안되는 비싼 월세를 내야하다보니 생활비에 대한 압박이 나의 정신을 더 날카로우면서도 약하게 갉아먹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나고 있을쯤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장에 대한 공포가 생기고, 나에 대한 불신이 싹트면서 밖으로 나가지도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힘든 시간이 찾아왔다. 밤에는 자질 못했고, 낮에는 먹지 못했다.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았다. 스트레스로 화장실을 계속 왔다갔다 했고, 화와 짜증이 하루를 지배했다. 아내의 위로와 격려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죽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절벽에서 무언가 보였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게 되면 두 가지 선택의 길을 보게 되는 것 같다. 포기하거나 이겨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하게 된다. 운동 선수가 성장하는 순간은 자신의 한계를 계속 부딛히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 순간을 넘어 서는 순간이라고 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나는 잘 모르지만 공부 잘하는 아내가 말하길 공부도 어려운 구간에서 어떻게 참고 견디는지가 그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성장의 순간인 것 같다고 한다. 나의 눈에 시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고통의 순간이 지옥의 문을 열려고 다가가는 순간의 찰나였다. 그렇다고 그 것이 엄청 대단한 무언가는 아니었다. 그냥 4개월간 고통을 겪으며 끊임없기 고민한 나의 문제와 변화의 포인트를 찾아내기 위한 몸부림에서 정말 작은 씨앗 같은 희망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하루를 견뎌내며 살아 낼 수 있었고, 지금은 그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되었다. 절벽의 끝에서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설명 할 수 없다.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동일하게 공감할 수 없을 뿐더러 각자의 힘듬속에서 느끼는 바는 다 다르다. 하지만 그 순간을 느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삶의 가치는 정말 다르다. 나가서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고 운동을 하고 다시 시장에서 열심히 싸우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그 스팟을 찾아 내는 것, 그리고 그 의지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무게를 느껴본 사람만이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