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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을 통해 드러나는 길복순의 깊은 모순

<길복순>(2023) 리뷰 및 분석#2

by 파도
복순의 색과 모순

복순은 엄마인 동시에 킬러인 인물로, 그 자체로 모순을 가진 인물이다. 양립하기 어려운 두 정체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복순의 모습은 그녀의 이중적인 생활과 그녀의 대사를 통해 접할 수 있지만, ‘’의 대비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영화의 전개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빨간색과 초록색의 대비가 주는 메시지가 흥미롭다. 두 정체성을 표현하는 두 가지 색인 빨간색과 초록색은 각각 킬러로서의 복순의 정체성, 복순이 엄마로서 가지는 정체성이다. 두 가지 색은 보색의 관계로 복순이 가진 모순을 표현한다.

빨간 수트, 복순의 핸드폰, 떡볶이를 좋아하는 모습, 빨간 유성 매직을 사용하는 모습까지 여러 장면에서 등장하는 빨간색은 킬러인 복순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빨간 수트를 입은 채, 빨간 유성 매직을 들고 영지(연습생)의 목을 긋는 장면은 킬러로서 그녀의 상징들이 집약적으로 표현된 장면인 동시에, 킬러 길복순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복순의 초록 카트 속 가득한 초록 채소, (심지어 마트 로고도 초록색이다), 플랜테리어 카페에서 진행되는 엄마들의 교육 모임 등의 장면에서 등장하는 초록색은 엄마인 복순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마트 장면은, 복순이 킬러의 일을 하던 다리와 마트의 진열대를 이어 붙이는 연출로 인해, 초록색으로의 색감 변화가 도드라져 보인다. 초록색이 엄마인 복순의 색으로 각인되는 듯한 장면이었다.

재영 그리고 모순

복순의 초록색은 자연스럽게 딸인 재영이와 연결된다. 재영이와의 관계에선 색의 의미는 재영이의 정체성으로 확장된다. 빨간색은 재영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 초록색은 복순이 재영에게 바라는 정체성이다. 복순의 색들과 의미는 다르지만, 연결성을 지닌다.

재영에게서 드러나는 빨간색은 재영이 가진 색이다. 재영이 가진 동성애자의 모습이 재영의 대표적인 빨간색이라고 볼 수 있다. 재영의 색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모습이자, 복순이 바라는 딸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더해서 복순의 딸이기에, 유전적으로 복순이 가진 폭력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밖에 없다. 철우를 가위로 찌른 사건이 하나의 예다. 이런 점에서 재영에게서 나타나는 폭력적인 성향은 복순의 빨간색과 연결성을 보인다.

복순의 초록색과 재영의 초록색을 연결하면, 결국은 복순이 엄마로서 바라는 재영의 모습이다. 복순은 자신이 키우는 초록 빛깔 화초들처럼 재영을 키우길 바란다. 폭력과 함께 자란 자신과 다르게 크길 바라며, 다른 색을 가지길 바란다. 재영이 등장하는 많은 장면들의 배경은 온실이다. 복순이 화초를 키우는 장소이자, 초록색으로 가득한 곳으로, 복순이 원하는 방향으로 키울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속에서 재영은 초록빛을 띠고 있다. 사립학교의 초록색 넥타이를 맨 채, 마치 온실 속에 있는 듯한 재영의 모습은 온전히 복순이 바라는 재영이의 모습이다

재영에 대한 이러한 복순의 바람이 도드라지는 두 장면이 있다. 첫 번째로는 재영과의 식사 장면이다. 복순은 햄을 먹으려는 재영에게 시금치를 계속해서 권한다. 시금치를 멀리 치워도 보지만, 재영은 계속해서 햄을 집어먹고, 복순은 이런 모습을 못마땅해한다. [해당 장면은 이후 다시 등장하는데, 복순이 재영의 정체성을 수용하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두 번째로는 복순이 빨간 수트를 입는 장면이다. 해당 식사 장면과 이어지는 장면인데 굉장히 흥미롭다. 빨간 수트를 입은 복순이 재영을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주는 장면인데, 학교에 도착해서 재영이 내릴 때까지 복순과 재영을 한 프레임 안에서 벽, 중문, 기둥, 차 문을 통해 계속해서 분리하고 있다. 혹여나 자신의 빨간색이 재영의 초록색에 묻어 변색시킬까 조심하는 복순의 마음을 연출한 장면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복순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재영에게선 빨간색이 계속해서 묻어난다. 학교에서 돌아와 복순이 장을 본 것 중 유일하게 빨간색인 사과를 집어든 채,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 재영의 옷 주머니에서 발견된 말보로 레드가 복순에게 재영의 색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복순은 그런 모습을 못 본 체 하며 재영을 계속해서 화초처럼 키우려 하지만, 계속해서 발생하는 갈등이 발생하고, 복순은 소라와 연락하던 재영의 빨간 핸드폰을 통해 재영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안은채, 딸은 일관성 있게 키우려 한 복순이 직면하는 가장 깊은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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