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간단한 짐들을 싸니 트렁크 한 개가 금세 채워진다. 큰 짐들은 이미 택배 차에 몸을 싣고 나보다 먼저 여정을 시작했을 것이다. 큰 짐 이래 봤자 우체국 제일 큰 박스에 꾹꾹 무릎으로 눌러 담은 1인용 이불 몇 개와 베개가 다지만.
항상 정리가 되지 않았던 방이 오늘만은 깨끗하다 못해 텅 비었다. 출근 아침마다 이것저것 입고 벗었다 던져 놓으면, 목요일쯤엔 방 한편에 옷무덤이 두어 개 봉긋하게 올라와 있곤 했었다. 이제부터 입지 않을 옷을 정리하고 나니, 남은 옷이라곤 잠옷용과 외출용 그 경계에 있는 반팔티와 반바지 몇 장이 전부다. 옷무덤을 이루던 출근의 흔적들은 파쇄기로 들어갈 내 사직서처럼 헌 옷 수거함으로 떠나보냈다.
비어있는 옷장과 매트리스만 남은 침대와는 대조적으로, 흐른 세월과 함께 자리를 채우고 있는 초중고 졸업앨범들과 전공서적들이 퍽 인상적이다.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서만 쭉 살아왔기에 시작부터 지금까지가 축적되어온 보금자리다. 그러나 나는 30년의 시간을 이곳에 내려놓고 떠나려 한다.
‘떠나서 무엇을 할 거니?’라는 질문엔 그저 어깨를 들썩해 보일 뿐이다. 젊었을 적 대책이 없던 때와는 다르게 더 대책이 없다. 계획도 크게 없다. 그저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으로, 한 번도 닿아보지 못한 곳으로 가자는 이유뿐. 3박 4일짜리 겨우 받았던 여름휴가 말고 온전히 공간도 시간도 나 만을 위한 곳. 미지의 공간에서 존재를 찾고, 이유를 좇고 싶었다.
여름이 끝나고 덩그러니 남아있는 해변가의 폭죽들은 한때는 맹렬하고 화려했지만 그 심지엔 더 이상 불이붙지 않는다. 그저 바람에 물에 휩쓸려 어디론가 가겠지. 더위가 완전히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나는 내 터전 전라도 광주를 떠난다.
작은 트렁크 하나를 실은 13년 된 중고차와 그를 운전하는 30년 산 여자에게는 미지의 공간 그 자체인 한반도 최북단, 강원도 고성이 그 목적지다.
전주, 대전을 넘어 서울을 찍고, 강원도로 들어가는 6시간의 주행은 전국 졸음쉼터와 휴게소를 방문하게 되는 생각보다 낭만적이지는 못한 경험이다. 시속 100km만 넘어가면 목욕탕 마사지 기계처럼 온몸을 달달 떨어대는 자동차 핸들도 마찬가지. 고단한 6시간 끝에 고속도로 외곽 풍경이 건물 숲에서 산, 산, 그리고 산으로 이어지면 마지막 휴게소, 홍천 휴게소에 도착한다.
해의 엉덩이가 태백산맥 산자락의 끝에 부딪혀 깨어지며 노을을 물들이는 장관과 풀 내음 머금은 공기는 이제껏 눈과 코로 맛보았던 것과 결이 다르다. 나는 홀로 강원도에 서있는 것이다.
최종 목적지 고성을 가려면 아직 2시간을 더 가야 한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차에 오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터널, 터널, 그리고 터널. 터널 내에서 차선을 바꿀 수 있는 곳은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어째서 터널은 끝나지 않는 걸까. 한 시간가량의 지독한 터널셉션이 끝나고 드디어 속초 톨게이트가 보이는 순간, 그 너머에 울산바위를 품은 노을 지는 설악산의 절경에 소름이 돋는다. 오늘이 아니었다면 난 이 경이로운 대자연을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었겠구나. 아니 존재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겠구나. 이곳에서의 삶에 대해 처음으로 확신을 한 시간이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속초를 지나 더욱 위로 더 위로 올라간다. '이대로 계속 올라가다간 월북일까? 내 차는 방탄유리가 아닌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정말로 하는 평생을 전라도에서 살아온 여자에게 드디어 보이는 이정표.
'여기서부터 금강산 가는 길입니다.'
8시간의 한반도 횡단 끝에 서른 살 이후의 이야기를 쓸 제2의 보금자리로 나는 들어섰다. 이제부터 시작할 고성의 아름다움, 인생에 대한 찬가, 고성방가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