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진부하면서도 매력적인, 보편적이면서 특수한, 모두의 것인 동시에 누구의 것도 아닌 단어가 있을까. 나라는 자아가 생겨날 때 즈음부터, 사랑을 생각하는 날들이 많았다. 모든 세상의 소녀들이 그렇듯 오글거리는 인터넷 소설을 밤새 읽으며 내 사랑은 언제 찾아올까 설레이는 밤을 지새웠고, 선생님의 시야를 떠나 복도의 구석으로 가는 옆 반의 커플을 몰래 따라가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꾹 눌러 참기도 했다. 이제 막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남녀 아이들의 서로를 향한 눈짓과 묘한 장난들은 학교의 공기를 들뜨게 했고 그 간질거리는 느낌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사랑에 대해 더 많이, 더 깊이 알고 싶다는 갈증은 항상 나의 어딘가에 있었다. 사랑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는 사랑을 말하는 노래를 듣고, 사랑에 아파하는 영화를 보고, 사랑을 정의하는 책을 읽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처럼, 사랑 없이는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듯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나의 숨이 닿는 모든 곳에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읽고 듣고 보아도 그 이야기들은 온전한 나의 것이 되어 나를 이해시키지 못했다.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만 했고, 사랑하지 않는데도 서로의 옆을 맴돌면서 아파했다. 모순된 그들의 행동을 보며,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눈물을 흘리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같이 따라 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무리 쥐어짜 내려해 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마음을 다해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 있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거나 아니면 말고의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 단지 그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좋아한다는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때가 있다. 심장이 발끝으로 떨어진다는 둥,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다는 둥, 왜 책이나 영화에서 그러한 표현을 쓰는지 나는 그 순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묘사였다. 정말 실제로 그랬으니까. 비가 오던 날, 우산을 접으면서 살짝 찡그린 표정으로 들어오던 그 사람의 모습은 아마 영원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흘러가던 그 짧은 순간. 준비운동도 하지 못한 채로 풍덩 빠져버린 나는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어린애였다. 몰아치는 여러 가지 감정의 파도에 제 몸도 가누지 못하고 계속해서 첨벙거렸다. 물살을 타는 법도, 물살을 잡아 방향을 바꾸는 법도, 물살을 즐기는 법도, 그 어느 것도 몰랐던 나는 무작정 닥치는 파도에 온몸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계속해서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준비 없이 시작된 감정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내 마음을 저 높은 곳에서 맨 밑바닥까지 떨어뜨렸고, 말 한마디로 내 기분을 이리저리 헤집어 놓는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어 더 힘들었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사람은 모두가 알 것이다. 사람이 바보가 되는 일은 아주 쉽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나를 보며 웃어주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시 한참을 허우적거릴 힘이 생겼다. 방향도 길도 잃어버린 채 물 밖으로 고개를 들어 숨쉬기에 급급했지만 이런 게 사랑이라면 꽤나 낭만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런 혼란스러움 정도는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 마땅히 견뎌내야 하는 필수조건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 하지만 가까워질 듯하면서도 한순간에 다시 멀어지는 우리의 사이를 붙잡고 있는 게 나 하나뿐이라는 의심이 피어날 때마다 나는 또다시 더 깊은 바다의 어둠으로 가라앉았고, 이런 반복은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내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면서 결국 나는 조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다칠 만큼 지쳐버렸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혼자 기분의 끝과 끝을 달리면서. 자꾸만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고, 어떻게든 한 번 더 마주치기 위해 그 사람 주변을 기웃거리던 어느 날, 나는 이제 갉아먹을 마음도 허우적거릴 힘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디어 파도의 밖으로 나갈 시간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렇게 서서히 물 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더 궁금했고, 그 이해에 대한 목마름은 더 강해졌다.
너무나도 확실하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도 있다. 내 손을 잡고 말하는 상대방의 떨리는 목소리와 어쩔 줄 모르고 흔들리는 눈동자를 통해 그 사람의 진심을 어렴풋이 느꼈을 때. 이렇게 마음이 티가 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숨기려고 해도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몸 안에 갇혀있지 못하고 어떻게든 어딘가로 삐져나와 속이 투명하게 드러나고 마는 사람.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 사람 앞에서는 내 마음을 갉아먹을 일이 없었고 오히려 채워질 수 있었다. 매일 매 끼니를 챙겨 먹는 것처럼 나는 꼬박꼬박 주어지는 관심과 애정 속에서 빈틈없이 부족함 없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항상 나를 채워주고 풍성한 마음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 하지만 그런 사랑을 받으면서도 내가 지금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받을 수는 있지만 할 수는 없어서,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 때가 종종 있었다. 나를 너무 좋아해 주는데 내 마음은 그만큼의 크기를 가지지 못해서 어려웠다. 나를 사랑해준다는 이유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 기울어진 마음의 크기를 가지고 계속해서 이 사람을 만나도 괜찮은 건지, 내가 사랑하지 못해서 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보이지도 않는 마음의 크기를 이리저리 쟀다. 자꾸만 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이 있다고 믿는 관계에서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은 생각보다 적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을 아끼고 억지로 웃었고, 함께하는 미래를 묻는 말에 거짓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공허한 ‘그래’ 속에는 아무런 무게가 담겨있지 않았다. 어색한 웃음으로 포장된 대답은 몇 초간의 정적과 함께 전달되었고 웃음을 방패 삼아 열린 상자는 텅 빈 채로 상대를 마주했다. 그 가벼운 무게의 상자는 어떤 무게보다도 더 무겁고 잔인하게 누군가의 마음을 짓누른다.
사랑에 당위성이 있다면 그건 아마 둘 중에 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더 아파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마음의 크기를 정해놓고 서로 이만큼씩 사랑하자 한다면 지금처럼 어렵고 힘들지는 않을 텐데. 사랑한다는 말에 똑같은 대답을 돌려줄 수가 없었다. 사랑을 모르는데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거짓으로 사랑을 꾸며내느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에게는 이런 솔직함이 더 상처였을까. 그런데도 이상하게 계속해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어디서 그런 사랑이 자꾸 나오는지. 끊임없이 사랑 열매를 만들어내는 나무 같은 그 사람에게 나는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 사람의 그늘에서 바람을 느끼고 때가 되면 떨어지는 열매를 받아먹었다. 때때로 놀러 오는 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무껍질의 결을 만지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런 게 사랑인가 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났다. 이런 사랑의 모양도 있구나. 사랑의 여러 가지 모양 중에 하나를 또 만났다. 이 사람을 통해 나는 조금씩 사랑받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사람은 어쩔 수 없는 너무나 한 명의 존재라 남보다 나에게 더 많은 신경을 쓰고 내가 가장 행복해질 방법을 찾는다. 그렇게 이기적인 두 사람이 만나 어느새 자신보다 서로를 더 생각하게 되는 그 과정 자체가 사랑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랑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다. 사랑은 오래도록 다시 말하고 또 말해도 그때마다 새로우니까. 그런 특수함 때문에 사랑은 어쩌면 평생을 살아도 다 알지 못하는 우주와 같다. 나라는 우주와 너라는 우주가 만나 더 큰 사랑이라는 우주를 만든다. 나는 이제 막 사랑이란 거대한 세계에 발을 들였고 보고 듣고 읽는 것만이 아니라 내 숨을 통해 느끼고 경험한다. 어떻게 어떤 사랑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 어떤 마음으로 사랑을 쓸 수 있을지 설레인다. 더 넓은 사랑의 세계로 가서 마음껏 헤엄치고 싶다. 이제는 아무것도 모른 채 허우적거리고만 싶지 않다. 물의 흐름을 읽고 손을 뻗는 법, 파도에서도 숨 쉬는 법, 자리를 잃지 않는 법을 배우며 망망대해에서 유영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항상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계속 나는 사랑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