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을 읽고 하는 상상의 인터뷰
이 글은 상상으로 "책문 - 이 시대가 묻는다"라는 책을 리뷰하는 데 있어 작가의 인터뷰 형식으로 쓰였습니다. 실제 인터뷰가 아니고 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함이니 참고해 주세요.
‘책문 – 이 시대가 묻는다’ 작가 김태완의 작품은 예상치 못한 조기 대통령 선거를 맞이한 우리에게 과거 정치인들의 생각을 살펴 현실의 정치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볼 기회를 주고 있다. 유교 경전의 이해와 깊은 사유를 엿볼 수 있는 진정한 조선의 선비의 문장이 담겨있는 이번 책을 읽고 작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책문은 조선시대 고급 공무원 선발 시험인 대과의 마지막 단계의 한 유형이다. 관료로 출사 하기 위한 첫걸음인 책문의 답안에서 어떤 물음과 성찰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직접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송: 작가님, 꼭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작가님을 알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아직 작가님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간단하게 소개 한번 해주 실 수 있을까요?
김: 안녕하세요. 저는 철학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김태완입니다. 고전 자료를 한글세대에 맞게 쉽게 번역한다는 것을 기본 출발로 삼고 책을 쓰는 사람입니다.
송: 궁금한 부분이 많으니 각설하고 여쭤보겠습니다. 책문이라는 존재를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책문을 저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 책문은 관료로 출사 하는 선비의 역사 성찰과 치열한 자기 점검을 하는 과정입니다. 출제자가 시급한 현안에 대해 문제를 내고 응시자가 자신의 역사의식, 정치철학, 인문교양을 종합하여 해법을 제출하죠. 조선시대의 책문을 읽어보면 책제나 대책이나 어쩌면 그렇게 오늘날의 현안과 문제의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는지 놀랍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방식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송: 치열한 자기 점검을 하는 과정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답안에 표현이 될 수 있나요?
김: 유교 사회였던 조선시대의 관료들은 모두 유교 텍스트를 연구하고 체득하여 정치를 익혔습니다. 유교 텍스트는 모두 정치철학을 다루고 있거든요. 유교가 가장 철학화한 성리학의 중요한 논점의 하나인 천리인욕론(天理人欲論)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천리는 자연의 질서, 선천적 원리라고 볼 수 있고, 인욕은 말 그대로 사적 욕망을 가리킵니다. 고급관료도 모두 사적 개인이면서 동시에 국가 기구의 관료인 자연인의 의식 안에서 상호 충돌하는 욕망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죠. 책문은 기본적으로 유교 경전을 갈고닦아 답안을 써야 하므로 응시자가 천리와 인욕이 충돌하는 현장에서 나의 인욕을 누르고 천리를 보존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다지는 선서라고 봐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자기 점검이 녹아 있을 수밖에 없겠죠.
송: 현시대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이념이 지배하고 있는데, 책문에 나타나는 유교나 성리학의 철학이 저희를 어떻게 교화할 수 있을까요?
김: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은 누구나 사회정의에 앞서 개인 이익을 추구하게 되죠.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라고 공자께서 말씀하셨죠. 군자의 지향은 사회의 정의이고 소인의 지향은 개인의 이익이라는 말로 볼 수 있어요.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개인의 이익 추구와 이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본주의 사회라 하여도 최소한의 정치의 공공성, 경제의 정의에 대한 도의와 상식은 저버리지는 말자는 원칙을 책문의 젊은 지식인 선비들의 정치, 학자적 소신으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 저를 포함해서 독자들이 유교, 성리학에 대해 다시 곱씹어 볼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책의 본론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세종대왕의 인재 등용 방법을 묻는 책문에 대해 강희맹의 대책을 담으시고 작가님의 생각으로 교육을 논하셨어요. 현재 교육의 현실 자체가 인재를 길러내는데 문제가 있다고 보시는 거죠?
성인은 교화로 인재를 빚어 내니
- 책 중에서 -
김: 강희맹의 대책에서 ‘인재는 성인이라는 뛰어난 대장장이가 빚어내는 데 따라 여러 가지 그릇으로 바뀝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지도자들이 성인으로서 교화를 통해 삶의 바탕, 가치, 사상 또는 무형적 재산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합니다. 어린이이게 어떤 종류의 가치가 바람직하고 어느 정도의 가치가 필요한지 선택하고, 그 가치를 자기 것으로 만들도록 돕는 교육철학이 필요한 것이죠. 이 부분을 뒤에 두고 현실적인 능력을 키우는 데에만 교육을 집중하여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은 교육이 소득 재분배의 통로로만 사용되어 수직적 계층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는 수단이 되어버렸죠. 그렇게 길러진 인재가 국가에 등용되어 소수 엘리트, 몇몇 대학교 출신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나라를 짊어지고 나가는 상황이죠. 세종 시대에도 이러한 고민이 같았으니 현재의 지도자들이 강희맹의 대책을 보고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송: 명문대 출신의 소수가 일으킨 사건들이 좀 떠오릅니다. 저 또한 제 아이를 교육하는데 깊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정치 상황에 돌아볼 내용 위주로 또 여쭤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외교는 항상 큰 이슈입니다. 중종이 물으신 외교관의 자질 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지금의 상황에 이 대책은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재능보다 덕을 우선해야 합니다.
- 김의정의 대책 중 -
김: 조선의 외교정책은 ‘사대교린(事大交隣)’이 기본이었습니다. 중국을 사대하고 여러 이웃나라와 교류하는 정책이었죠. 현재는 기본 구조에서 미국이 중국을 대체한다고 봐야겠죠. 사대란 힘의 강약을 인정하는 선이라고 봐야 합니다. 단순히 강국을 떠받드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의 제후를 자처하며 형식을 갖추고 실질적으로 자주적, 평화적, 호혜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주자학을 국가이념으로 삼고 중국과 동등한 문화민족이라는 자존의식을 갖게 되죠. 이 조선의 책봉-조공 외교는 오늘날 한미관계를 돌아보는 거울입니다. 한미관계를 통해 국제질서 참여하는 명분을 얻고 국제적 공인을 받아 권력 정당성과 정통성을 확보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웃 국가와 교류하는 것에도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자주성 없이 단순히 화친이냐 반목이냐 선택하는 외교는 조선이나 대한민국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중종의 책문에 김의정의 대책은 지금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천 길 낭떠러지 앞에서도 대의를 지켜서 우뚝 서며, 아주 작은 일에도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리고, 특이한 궤변으로 해결하지 않고, 충성과 의리로 절개를 튼튼하게 세우며, 약삭빠른 꾀를 따르지 않고, 국가의 위신을 높일 수 있는 일들은 덕 있는 사람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재능만이 아닌 기본적 행실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은 비상 상황으로 볼 수 있죠. 재능은 평상시라면 쓸 수 있지만 비상시에는 쓸 수 없습니다. 재능을 믿고 처리하는 사람은 외교 업무를 완수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라의 위신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외교에 재능만 있는 사람이 필요할지 덕을 갖춘 사람이 필요할지 돌아봐야 합니다.
조선과 중국, 그리고 대한민국과 미국
- 책 중에서 -
송: 외교가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이니 말씀하신 부분은 돌이켜 볼 필요가 있겠네요. 책 안에 많은 책문이 있지만, 역사에서 성군이었으나, 많이 언급되지 않는 명종의 책문이 눈길이 갔습니다. 대선이 코앞에 있는 상황에서 명종의 정부 조직 개혁 방안의 물음은 유권자 입장에서도 관심이 갔습니다. 김효원의 대책을 대한민국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김: 김효원은 한때 권문세가와 친하고자 했으나 행실을 바꾸고 올바른 선비의 길을 걸은 사람입니다. 올바른 선비의 길을 간 사람의 급제 시절의 소신을 같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김효원은 정치는 제도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부분을 강조합니다. 김효원의 대책에서 초야에 있는 현명한 사람들이 남김없이 쓰여서 왕에게 뛰어난 선비들이 많아야 한다고 하죠.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중요하고 상관에게 잘하고 서민에게 잘 보여야 함을 강조합니다. ‘백성이 풍족하지 않으면, 임금이 누구와 함께 풍족하겠는가?’라는 문장은 정부 예산을 잡는 부처들이 돌아봐야 합니다.
대책의 내용 중 근본이 임금에 있다고 하는 말은 정부 조직의 근본은 총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대통령과 왕은 권한이 다르지만 책임 지도자로서 보면 좋겠습니다. 김효원은 또한 재상을 바로 뽑아야 한다고 말하죠. 조선의 재상은 현재의 행정부 각 부처의 장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효원은 주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임금의 직분은 재상을 평가하는 데 있다.’ 한 마디로 임금이 자신의 분신을 재상으로 두고 재상을 잘 관리하여 평가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라는 뜻이죠.
그런데 사람을 구하여 쓰는데 요즘은 정권 창출에 따른 논공행상 장관 임명이 잦고, 부처 이기주의로 인해 국력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죠. 복지부동의 보신주의적 관료주의, 국제 정세에 대한 무지, 대미 종속적 관계 등 대체 행정부처들의 행정철학이 있는지조차 의심되죠.
대한민국 관점에서 본다면 국무 위원이면서 집행기관의 우두머리인 장관 임명의 중요성을 항상 생각해야 하며, 정부 조직의 개혁은 인사에서 시작되고 그것은 총책임자인 대통령의 근본이자 직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적용할 수 있겠죠.
송: 작가님의 말씀이 반드시 다음 정부에서는 적절히 적용되어 소신 있는 행정 철학이 실현되기를 바라봅니다. 사실 여쭤보고 싶은 내용이 정말 많지만, 시간 관계상 짧은 질문 한 가지만 드리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역시 정치를 포함해 인간의 모든 삶에는 철학이 기본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사회는 철학보다 실질적 결과에만 집착한다고 보이는데요. 정치에 있어 철학의 중요성을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 정치란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생존을 책임지는 일입니다. 맹자는 군주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군주는 한 사내일 뿐이라 합니다. 군주가 군주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군주를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죠. 지금의 민주주의와 맞닿아 있는 철학이 있습니다. 백성 즉 국민이 국가에 권력을 양도해 준 국민을 위해 수행해야 할 기본 의무는 역사 성찰과 치열한 자기 점검 없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죠. 정치는 시대의 물음에 답하는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이 인간 근본의 이해인 철학 없이 시대의 물음에 답하는 것은 직무유기인 거죠. 사람살이의 본질적 측면을 반영하여 실현하는 정치는 항상 철학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송: 저도 현실의 결과에만 집중했던 삶을 돌이켜 보게 되네요.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저도 철학을 탐구하는 삶을 가져보겠습니다. 특히 책을 읽는 동안 동양 철학을 등한시한 부분을 반성했습니다. 오늘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고 작가님의 다른 책도 읽어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김: 정치를 직접 하지 않아도 우리는 주권자로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자께서 ‘정(政)이란 정(正)입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바로잡는 행위가 정치이니 우리 삶 곳곳에도 정치가 스며들어 있는 것입니다. 저도 즐겁고 뜻깊은 시간이었고, 기회가 된다면 다른 책으로도 만나보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태완 작가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율곡 이이의 책문을 텍스트로 삼아 실리사상을 연구하여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숭실대, 경희대 등에서 동양철학, 한국철학 등을 강의하였다. 현재 광주광역시 소재 지혜학교 철학교육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