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ules of Contagion' 수학자가 쓴 전염의 원리
기억조차 희미해진 대학교 2학년 시절, 필수 이수 과목 중 하나로 철학 수업이 있었다. 수학을 전공하는 내가 왜 철학 강의를 들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수학 좌표 방식을 르네 데카르트가 정리해 만들었다는 사실로 그 질문의 답을 갈음하겠다. 『전염의 원리』라는 책을 읽으며, 한 학기 내내 옷 세 벌만 번갈아 입던 그 강의의 교수님이 강조했던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다시금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배운 고등수학이 과연 어디에 쓰일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살아간다. 이 글이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이 되리라고는 자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배웠던 고등수학이 결코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느끼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1918년과 1919년 사이, 신종 인플루엔자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며 팬데믹이 되었고, 5천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사망자의 두 배에 달하는 숫자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100년 동안 인플루엔자 팬데믹은 네 차례 더 찾아왔다. 종교나 이념, 혹은 광기에서 비롯되는 전쟁보다, 전염병에 대한 연구가 인류의 생존에 더 절실히 필요하지 않았을까.
팬데믹 하나를 봤다면, 그건 … 팬데믹 하나를 본 것뿐이다.
- 전염병의 법칙, 애덤 쿠차르스키 -
이런 이유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영국에서 윌리엄 커맥(William Ogilvy Kermack)과 맥켄드릭(Anderson Gray McKendrick) 두 사람이 전염병 모델의 기초가 되는 SIR 모델을 정리했다. S(Susceptible)는 감염될 수 있는 사람, I(Infectious)는 현재 감염된 사람, R(Recovered)은 회복되거나 사망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 범주 간 전이를 수학식으로 표현한 것이 SIR 모델이다. 감염자가 접촉을 통해 S를 I로 전환시키고, 일정 시간(t)이 지난 후에는 R로 이동한다. β는 전염률, γ는 회복률을 나타낸다. R₀는 감염자 1명이 전파하는 평균 감염자 수를 나타낸다. R₀가 1보다 크면 유행이 일어나고, 1보다 작으면 소멸한다.
dS/dt=-βSI
dI/dt=βSI-γI
dR/dt=γI
갑자기 수식을 보고 현기증이 올 수도 있으니, 가볍게 참고만 하기를 권한다. 실제로 발표된 모델링 논문을 찾아보면, 당시 수준에서 얼마나 혁신적인 시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애덤 쿠차르스키(Adam Kucharski)는 이 ‘전염(Contagion)’의 모델이 단순히 질병 전파에만 머무르지 않고, 금융 위기나 가짜 뉴스 같은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적용한다’는 것은, 전염에는 나름의 단계와 패턴이 있으며, 사회적 이슈도 그러한 전염의 관점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 분석의 근간은 수학적 모델링이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예를 들어, 쿠차르스키는 금융 시스템 또한 기관들이 네트워크로 긴밀히 연결된 구조라 전염에 취약하다는 가설로 접근한다. 전설적인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붕괴는 슈퍼 전파자에 의한 감염 시나리오와 닮아 있었다. 금융기관들은 파생상품 계약망으로 얽혀 있었고, 리먼 브라더스의 부실은 곧바로 전체 시스템을 감염시켰다. AIG,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같은 대형 기관들은 파생상품의 허브였으며, 결국 슈퍼 전파자를 거쳐 감염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리스크 스트레스를 테스트하는 절차는 백신 시뮬레이션과 닮았고, 자본 비율 규제는 마스크 착용과 유사하며, 은행 파산과 격리는 감염자 격리와도 닮아 있었다.
디지털 세계에서의 전염은 어떨까. 소셜미디어에서 밈(Meme)과 가짜 뉴스는 인플루언서라는 슈퍼 전파자를 통해 확산된다. 팔로우와 공유는 곧 감염의 접촉이 되고, 가짜 뉴스의 대규모 확산은 바이러스의 전염 단계를 그대로 닮았다. 참고로 인플루엔자는 영어에서 영향(Influence)의 이탈리아어이다. 소셜미디어의 인플루언서와 명칭부터 유사하다.
쿠차르스키는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 정보 확산의 허브 역할을 하며, 알고리즘이 클릭률과 반응성을 학습해 전파 가능성이 높은 콘텐츠를 우선 노출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런 현상을 ‘온라인 전염병’이라 부르며, 감염병 모델로 이해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마 전 탄핵 국면에서 극우 유튜버들이 선거관리위원회에 90여 명의 중국 간첩이 침투했고, 국정원과 주한미군이 공조해 주일미군으로 평택항을 통해 이송될 것이라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계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였으며, 결국 헌법재판소 변론에서 윤석열의 변호인이 이 내용을 언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쿠차르스키는 사실 검증(팩트체크)이 백신이고, 콘텐츠 차단과 제재는 감염자의 격리 조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트윗 한 줄이 수백만 명에게 퍼지는 구조는 바이러스의 전염 양상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 전염병의 법칙, 애덤 쿠차르스키 -
하지만 SIR 모델에 대한 반론도 분명히 존재한다. 브라질의 수학자이자 공중보건 연구자인 찰스 로베르토 텔레스(Charles Roberto Telles)는 SIR 모델이 현실과 여러 면에서 괴리를 가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세 가지 큰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 COVID-19 실제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일일 신규 확진자 수의 비대칭성과 불규칙한 변동성은 SIR의 단순한 구조로는 설명이 어렵다.
둘째, 계절 변화나 기후, 지역별 환경 요인이 확산에 미치는 영향을 모델이 반영하지 못한다. 이런 요소들은 전파 양상에 중요한데 고려되지 않아 예측의 정확성이 떨어진다.
셋째, 방역 정책, 사회적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 같은 인간의 행동 변화가 확산에 큰 영향을 주지만, SIR 모델은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특히 COVID-19처럼 무증상자, 사망자, 잠복기, 재감염자가 혼재하는 경우, 단순화된 집단으로 나누는 것은 예측의 의미를 훼손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잠복기와 재감염, 무작위성을 반영하는 새로운 파라미터를 갖춘 모델들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쿠차르스키의 시선은 전염의 개념을 폭넓게 사회 현상에 비추어 보려는 시도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만큼 과학적 정밀성이 희미해지고, 다소 무리한 일반화라는 비판이 함께 존재한다. 금융 위기와 폭력, 가짜 뉴스 같은 복잡한 전파 현상을 같은 틀 안에서 설명하려는 시도가 때로는 설득력이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단순화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나는 『전염의 원리』가 보여준 넓은 시선이 여전히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전염의 개념을 다양한 사회적 맥락에 대입해 보려는 시도가, 많은 독자들에게 낯선 통찰과 새로운 물음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복잡한 세상을 단출한 수학 모델에 담아내려는 일은 한계가 따르고, 때로는 위험하다. 하지만 우리가 배워온 고등수학과 모델링이 단순히 흘러가는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세계의 문제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는 점에서 그의 시도는 충분히 소중하다.
쿠차르스키는 모델과 수학이 의사결정과 공중보건 정책, 금융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실제 사용 가능한 도구임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전염병의 궤적을 좇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가 사는 사회와 그 안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파장을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바라볼 것인가를 묻는다. 수학적 모델과 네트워크 이론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면서, 복잡함을 단순함으로 정제하고, 그 단순함에서 새로운 시야를 열어 주었다. 학술적 깊이와 대중성을 함께 보여준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
아마 쿠차르스키가 자신의 분석을 절대적인 진리로 내세웠더라면, 나는 그 태도에 선뜻 동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델을 마치 과학자의 크리스털 볼처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 행동을 함께 고려하고 해석할 줄 아는 지적 겸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모델이란 결국 “현실을 단순화한 지도”일 뿐이며, 복잡한 세계에서 가능한 결과를 미리 상상해 보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했다. 바로 그 점에서 나는 그의 사유와 태도를 존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