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본이야기
스키야가 일본 규동 업계 1위가 됐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나는 순간 멍해졌다.
전통의 강자 요시노야를 제치고, 그 스키야가… 진짜로 1위라니.
무심코 던진 탄성 뒤로, 거의 30년 전의 기억들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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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시작
나는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의 작은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주 20시간의 노동 시간제한 속에서도 아르바이트를 구하고자 이력서를 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시큰둥했다.
내 일본어는 나쁘지 않았지만, 당시만 해도 외국인을 대하는 일본 사회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이었다.
처음으로 일하게 된 곳은 지역에서 꽤 큰 규모의 이자카야였다.
기대와 달리,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
메뉴만 해도 300개. 그중 절반은 본 적도 없는 음식들이었다.
이틀 동안 메뉴를 외워 보려 애썼지만, 처음 듣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억지로 꺼내는 일은 고역이었다.
첫날, 취객들의 사투리 섞인 주문은 알아듣기 어려웠고, 시끄러운 엔카 음악과 술자리의 소음은 나를 압도했다.
3일째 되는 날,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설거지라도 할래?”라는 매니저의 제안도 내 자존심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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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라면집에서 배운 라면보다 귀한 것들
두 번째로 구한 아르바이트는 작은 라면 가게였다.
오래된 노포였고, 사장이 직원 넷과 함께 운영하는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특히 내가 근무하게 된 저녁 시간엔 젊은 주방 직원 둘만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한 명은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낮에 일하고 저녁에 라면집에 오는 성실한 청년이었고,
다른 한 명은 내성적이지만 라면 만드는 솜씨가 뛰어난 친구였다.
감사하게도, 그들은 외국에서 온 나를 거리낌 없이 받아주었다.
> “문, 라면 다 먹어봤어?”
“아니, 그런 적은 없는데…”
“그럼 오늘부터 메뉴 1번부터 끝까지 매일 다른 걸 해줄게. 제일 맛있는 거 알려줘.”
이 말대로 나는 백여 가지 라면을 하나씩 맛보며, 일본어와 사람 사는 정을 함께 배워갔다.
시간당 630엔. 많지 않은 돈이었지만, 나는 학비를 벌기 위해 묵묵히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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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회는 야간 근무라는 틈에서 왔다
6개월쯤 지나, 학교 기숙사에 붙은 ‘스키야 오픈 알바 모집’ 전단이 눈에 들어왔다.
시급은 무려 800엔. 나는 곧바로 지원했다.
다른 일본인과 경쟁하기보다 가능성 높은 야간 근무를 택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쪽잠을 자고 일하더라도, **“일단 붙는 게 먼저다”**라는 생각뿐이었다.
스키야는 당시 규동 업계의 후발주자였지만, 전국에 250개 매장을 두고 빠르게 성장 중이었다.
독특했던 건 본사 직원이 오픈 후 2주간만 머무르고 떠나는 시스템이었다.
그 2주간 나는 매장 운영과 관련된 철저한 교육을 받았고, 일본 사회의 민감한 주제까지도 토론하며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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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리고, 나를 Chef로 만든 이유
2주 후, 마지막 날이었다.
인사를 하려 매장에 들어가자, 동료들이 박수를 쳤다.
> “문이, 이 매장의 Chef(점장) 이 됐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당시 스키야의 구조는 점장을 아르바이트에서 선발해 운영을 맡기고,
그가 직접 직원 교육과 스케줄도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이 말한 내 장점은 책임감이었다.
게다가 나는 군필자였다. 일본은 자위대가 ‘모병제’라 군인을 보기 어렵기에,
한국에서 병역을 마친 사람은 특별한 인물로 여겨졌다.
시급은 1,050엔으로 올랐고, 근무표도 내가 짰다.
매일 폐기되는 쇠고기와 김치가 아까워, 나는 기숙사에서 다양한 고기 요리를 해 먹었다.
한동안 불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은 이유는 아마 그때의 포만감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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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눈 오는 날, ‘등색’ 한자가 생각나지 않아
잊지 못할 날도 있다. 폭설이 내려 손님이 한 명도 없던 날.
본사에서 재고 조사를 요청했는데, **‘좌석 시트의 색’**을 일본어 한자로 기입하라는 항목이 있었다.
‘등색’이란 단어의 한자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결국 나는 새로 오픈한 매장의 번호를 받아 전화했다.
“여보세요? 혹시 등색 한자 좀 알려줄래요?”
전화를 받은 건 교육 담당자였던 이쿠다였다.
그는 웃으며 “아, 맞다. 문은 외국인이었지” 하고 놀렸다.
그 일 이후로도 그는 내게 작은 위기의 순간마다 힘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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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리고 스키야는, 1위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스키야가 요시노야를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지금, 시장 점유율 50%를 넘겼다는 뉴스를 보며 나는 혼잣말을 했다.
> “세상에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
어쩌면, 내가 스키야에 남긴 작고도 성실한 흔적이
그 도약의 조각이 되었기를.
그리고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도, 이 글을 읽고
자기만의 스키야를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