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 포트맥머리
한 남자가 다급히 사람들에게 내려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우리는 당시 높이 60미터, 너비 10미터쯤 되는 인코넬로 만들어진 커다란 용기, 일명 코커(coker)의 내부, 스카폴딩 중간 지점에서 작업 중이었다. 두꺼운 강철 벽으로 둘러싸인 탓에 외부 상황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작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아연실색 그 자체였다.
귀를 찢는 듯한 사이렌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붉은 노을 같던 하늘은 어느새 검붉게 변해 있었고, 시커멓게 그을린 재들이 하늘에서 함박눈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하늘 전체가 검은 눈송이로 뒤덮인 듯한 느낌이었다.
음울한 분위기는 마치 지옥을 그려낸 영화 세트장을 연상케 했다.
하늘을 향한 굴뚝들마다 대포를 쏘아 올리듯 배관에 남아 있던 오일을 태우고 있었고, 불기둥은 족히 30~50미터는 되어 보였다. 굉음과 불기둥, 붉게 물든 하늘이 어우러져 그 장면은 기괴하면서도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마치 재난 영화 한복판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절감하는 장면을 지나고 있는 듯했다.
감독이 지옥을 상상해 그려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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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Suncor 메인 플랜트 중앙의 거대한 집결 지점, 'must point'로 이동했다.
잠시 후, 최고 책임자로 보이는 인물이 짧고도 단호한 어조로 상황을 설명했다.
"불이 재발화했습니다. 이번에는 선코 메인 플랜트 방향입니다. 지금 즉시 피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술렁였고, 탄식과 혼란이 뒤섞인 채 카오스 속으로 빠져들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평화롭다고 여겨지던 캐나다에서, 그것도 두 번째 피난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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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 포트맥머리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로 첫 번째 피난을 했었다.
겨우 진화되었기에 현장에 복귀했건만, 이번엔 더 심각했다.
불길은 다시 살아났고, 메인 플랜트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내가 묵고 있던 캠프는 Suncor에서 차로 10분 거리였다.
하지만 메인 플랜트 내부의 수천 명이 동시에 빠져나가려니, 이동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육교만 넘으면 캠프에 도착할 수 있다는 안도감도 잠시, 운전사가 무전을 받자 갑자기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왜 안 가는 거야? 캠프가 바로 앞인데!”
그때, 운전사의 한 마디가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당신들 캠프가 불에 탈 수도 있어요.”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도 피난을 가본 적 없던 나.
그런 내가 이민 온 캐나다에서, 두 번째 피난을 하게 될 줄이야.
그리고 이번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였다.
우리는 가능한 한 산불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해 북으로, 또 북으로 달렸다.
운전사의 무전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피난 버스 안에서 여러 생각에 잠겼다.
아침에 캠프에 지갑을 두고 나온 탓에 주머니엔 돈 한 푼 없었다.
짐은 캠프에 그대로였고, 몸은 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400도에 달하는 고온에서의 작업 때문이었다.
긴장감 속에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버스 안에서 긴장이 다소 풀리자 비로소 그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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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쯤 달려, 우리는 북쪽의 맥클라렌(MacLaren) 캠프에 도착했다.
터덜터덜 사무실로 향하는 길, 수백 명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채 각자의 트렁크를 끌고 방 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트렁크 위에, 또 어떤 이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7월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견디고 있었다.
지인들과 통화를 하거나, 옆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런 황망한 상황이면 누군가 서비스가 왜 이 모양이냐며 소리칠 법도 했지만,
캠프 측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모두가 이해하고 배려하고 있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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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비에서 한국인 지인들을 만나 양말이며 팬티를 빌릴 수 있었다.
그들과의 만남 덕분에 조금의 현금도 마련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이다.
캠프 안에는 작은 편의점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는 세이프티 담당 요원이 단 다섯 명씩만 출입을 허용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나와야만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더 빨라 보일 수 있지만, 계산과 안전 문제를 고려하면 오히려 이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빌린 돈으로 칫솔과 비누 등을 구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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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방, 낯선 침대.
겨우 잠을 청했지만, 새벽 호출을 받고 우리는 비상사태 전용 비행장으로 이동했다.
비행기 안에서 무려 4시간을 대기한 끝에, 이륙할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포트맥머리 인근은 아직도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 산불로 인해 포트맥머리 인근 주민 65,000명과 수많은 오일 필드 노동자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그럼에도 놀라운 사실은,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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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말한다.
캐나다는 선진국이 아니라고. 인터넷은 느리고, 행정은 비효율적이며, 의료 시스템은 믿을 수 없다고.
어느 정도는 나도 공감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선진국’의 기준은 다르다.
진짜 선진국은 위기의 순간, 인간을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사회가 아닐까.
그날의 포트맥머리에서, 나는 그 성숙함을 똑똑히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