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봄 어느날 벗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곡사를 부모님 손에 이끌려 갔었죠..지금은 고향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거리지만 당시로서는 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1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죠..
마곡사는 ""춘마곡 추갑사""라고 충청 제일의 경치가 펼쳐지는 곳이죠...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심어진 벗꽃나무는 봄 방문자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죠. 일곱살 나에게는 그꽃이 그꽃이였지만
오십의 넘은 부모님은 차마 4살짜리 막내를 데려가기 남부끄러워서 얼떨결에 제가 낙점을 받았죠..
아버지는 제가 아는한 우리 동네 제일의 멋쟁이였고 어머님 또한 농번기를 앞두고 그해 처음이자 마지막 나들이라 한껏 치장하고 길을 나섰죠..아버지의 친목계는 회원만도 수십명에 달해서 일행이며 바리바리 싼 형형색색 짐들의 행렬은 마곡의 꽃들도 시기하기에 충분했죠..
시장통에는 이미 도시화의 물결이
범람해서 뭇아주머니들이 멋들어진 양장에 양산까지 챙겨든 상태였지만 전기도 없던 우리 마을에서는 이제 겨우 한두명씩 쪽진 머리를 뽀글뽀글 머리로 바꾸고 있었기에 치마저고리를 입었지만 엄마로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 패션이기도 했죠..
흐드러진 벗꽃 아래에서 갖자 싸온 식사를 하는데 그때 처음 김밥이란걸 먹어 보았답니다.. 시장통에 양장점을 하던 석미 엄마는 어떠한 요술을 부렸는지 난생 처음 보는 맛난 음식을 찬합 가득히 싸들고 와서 오늘날로 말하면 인싸가 되었죠..
저도 길게 줄서서 하나를 맛보았답니다...입속에서 사라지는 꿈의 맛!!
그날 집에 돌아와서 한동안 형제들에게 크나큰 자랑거리가 생겼었죠..
엄마가 아침부터 정성스럽게 준비한 하루나(유채) 겉절이며 무말랭이가 왠지 그날은 시들해 보였죠...
식사가 끝나고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돌아가며 구성진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못부르는 사람들은 약간의 벌금을 냈어요..
몇명의 신식 문물을 받아들인 분들이 몸을 요란스럽게 흔들어 대던 기억이 있네요...뒤켠에서 아주머니들의 남사스럽다며 얼굴 붉히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행사는 잘 마무리 된듯요..아마도 무거워서 동동주며 막걸리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였를 거예요...
마지막으로 대웅전 5층 석탑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게 되었죠...그때만해도 사진 촬영이 처음인 사람들이 많아서 한껏 긴장한 자세로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죠..
8남매의 7째는 가난한 살림에 생년월일을 제대로 올려준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 따름이였기에 사진 같은 것이 있을턱이 없었죠. 형제중에도 맏딸을 제치고 집안의 장손에 장남으로 태어난 큰형만이 떡하니 돌사진을 가지고 있을뿐 누구하나 그 흔한 어릴적 모습을 사진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답니다..
사진사의 호명를 받고 우리는 떨리는 무대에 올랐죠....몇번 눈을 감았는지 사진사의 호통과 왁자지껄한 청중의 웃음을 뒤로하고 겨우 ""찰칵"" 그날의 순간을 사진에 담을수 있었죠..
첫 사진 찍던 날을 기억하나요!!..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 났다면 결코 기억하지 못할 그 기억을 또렷이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는 나는 행운아인것 맞겠죠....
뵙고 싶네요. 그날의 부모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