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에릭

by 문주성

수화기 너머로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이 침묵은 긍정을 말하는 것인지 부정을 말하는 것인지 모호해질 즈음 그로부터 다음의 말이 있었다.


“제가 도와드릴 수는 있는데 에드먼턴에 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혹 토요일 캘거리로 오시면 제가 가능한의 범위에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십수 년간 책상머리에서만 컴퓨터로 하던 일에 익숙해진 탓일까 처음 대하는 거친 일들은 다소 생경하기도 하고 낯섦이 실수로 이어지기도 해서 이민 초기 자꾸 다치고 그랬던 적이 있다. 그즈음 용접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생각된 것이 인스팩터였다....


조사해 보니 앨버타에 눈에 띄는 한국인 인스펙터가 세분 있었는데 난 캘거리에 사는 에릭이란 분에게 눈길이 갔다.


낯선 사람으로부터의 전화, 다짜고짜 내 소개를 하고 같은 한국인이므로 당신이 나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강변하고 있던 끝의 수화기 너머의 침묵!….. 거절당하면 어쩌나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전해진 호의였다.



토요일 아침 캘러리(에드먼턴에서 3시간 거리)로 향하면서 에릭이란 어떤 사람일까 무척 궁금했다. 인스펙터로서 꽤 높은 위치라면 나이가 지긋한 이민 1세대일 듯도 한데 이민 1세대가 언어적인 영역도 그렇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기 쉽지 않은 곳이 이민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민 2세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정확한 우리말을 구사하고 있었다.


우리는 당시 캘거리에서 유행하고 있던 파닭 집에서 만났다.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예상과는 너무도 다른 동글동글한 귀여운 아직 애티가 덜 빠진듯한 젊은 청년이 나타났다. 첫 느낌이 그랬다. 이 친구 귀엽다.


에릭은 보일러메이커의 협력업체라는 곳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인스펙터로 일하고 있었다. 마침 토요일이 근무라서 자신을 쉐도잉(따라다니면서)하면서 인스펙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직접 체험하시는 게 좋을듯하여 어려운 걸음을 하시게 했다는 것이 아닌가.. 아이 보느라고 통화 중 답변이 늦었다며 사과의 말도 덧붙였다...


식사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난 눈앞의 이 젊은이에게 넋이 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정중하면서 예의 바르게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 나의 입가에는 시종 흐뭇한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내가 제대로 찾아왔구나!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에릭이 먼저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생면부지였던 나의 요청에 의해서 굳이 시간을 내어주고 있는 쪽은 그쪽임에도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 식사 정도는 대접하고 싶다는 것이 에릭의 설명이었다.



회사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상당한 규모의 크기였다. 곳곳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오일필드에서 많이 쓰일 것 같은 압력용기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토요일임에도 오버타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4시간 동안 에릭은 멀리서 다가온 친구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듯 자신의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너무 좋았다. 뭔가 사람대접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낯선 외국에서 느꼈던 허물어지던 나의 자존감을 어느 정도는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았다. 그의 따스한 배려와 미소만으로도 나는 이미 행복했다.



공장을 두어 번 돌고 나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구석에서 청소 중이시던 한국인이었다. 에릭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분께 정중히 인사하며 나를 소개해주는 것이 아닌가.


영주권 때문에 회사에서 헬퍼(청소) 일를 하고 계시다는 50대 중반의 아저씨였다. 그를 대하는 에릭의 표정이 얼마나 다정하고 따스하던지….. 잠시 에릭이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분은 에릭을 선생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에릭님은 참 고마운 선생님이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저렇게 높으신 분이 청소하는 나를 아저씨 아저씨 하고 부르며 존중해 주는데 말은 잘 통하지는 않지만 어찌 다른 캐네디언들이 나를 무시할 수 있겠냐고 하시면서 ""선생님 덕분에 비록 낯선 이국 땅에서 청소를 하고 있을지언정 마음만은 행복하답니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헤어지면서 나는 에릭에게 물었다... 어찌 이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행할 수 있는지를... 그는 겸연쩍어하며 말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예상치 못한 이민을 오게 되었고 영어도 못하는 아시아 작은 나라에서 온 성년이 된 자신을 캐나다 사회는 원치 안 하는 것 같았다고. 한동안 적응하지 못해서 그도 많이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때 많은 격려와 응원을 해준 사람은 역시 주변의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캐나다 시민권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의 몸속에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그날 난 실존하는 위대한 영웅의 모습을 보았다...



에드먼턴으로 돌아오면서 난 인스펙터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니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에릭만큼 멋진 인스펙터는 될 수 없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면서 적어도 나가 내 자신의 직업에 만족할 때까지 좀 더 노력해 보자고 나는 나와 타협을 꽤 했다.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그 마음을 높이 사고 싶다.. 처음 만나는 도움을 청하러 온 낯선 사람에게 선뜻 점심을 대접하고 자신의 시간을 내어줄 정도로 나는 타인에게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던가.



우리는 그 뒤로 9년 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가끔 카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봉사활동으로 이민 와서 이곳에 정착하려는 다른 이에게 정보를 나누어주고 취업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함께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우리 팀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내게도 가끔 낯선 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여보세요. 문주성씨시죠""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에릭이 되어서 답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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